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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티 May 27. 2021

불안과 완벽주의의 상관관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던 26살, 업계에서 나가는 광고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려준 회사에 너무 감사했고 내가 속한 팀과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했다. 당시 사수가 메인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서포트하는 일을 맡았는데 워낙 일 잘하고 꼼꼼했던 사수여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그렇게 호흡을 맞춰 일한 지 2개월이 지났을 때였나, 사수가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다음 주 부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고, 남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달라는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갑자기? 입사한 지 2개월 밖에 안된 내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마무리해...?" 당황스러움과 아쉬움, 약간의 원망스러움이 교차했다. 무려 중국 타겟의 글로벌 프로젝트였고 중국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내가 중국어로 스토리보드를 기획하고(물론 번역가가 도움을 주었지만) , 페이지를 디자인하고, 중국 광고주와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니. 막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내 곁엔 팀장님이 계셨고 팀장님께서는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셨다. 그래서 어찌어찌 그냥 닥치는 대로 했다.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 봐 두세 번, 아니 네다섯 번은 더블 체크하면서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다행히 큰 이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엄격해지기 시작한 것이.


유일하게 챙겨 보는 예능인 <금쪽같은 내 새끼>. 37화의 주인공 금쪽이는 학교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툭하면 울고 툭하면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금쪽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도 보고, 말도 건네보고, 화도 내 보고, 여러 방법을 써도 고쳐지지 않는다며 사람과의 대화와 표현을 어려워하는 금쪽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금쪽이 엄마는 금쪽이의 친엄마가 아닌 고모할머니였다. 금쪽이가 어렸을 때 금쪽이 친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금쪽이를 자식으로 입양하여 키우고 계신다고 했다. 내 형제의 아이도 아니고 내 조카의 아이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며 금쪽이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실제로도 금쪽이 엄마는 금쪽이에게 늘 아낌없이 표현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쪽이는 숙제 검사를 하다가도, 농구 시합을 하다가도 눈물을 흘렸다. 주위 사람들이 왜 우냐고 달래도 금쪽이는 한 마디 없이 입을 다문채 눈물만 똑똑 흘렸다.

 

[출처] 채널A
[출처] 채널A


이런 금쪽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은영 선생님도 금쪽이를 안타까워했다. 금쪽이는 시험 문제에서 한 문제만 틀려도 힘들어하고 엄마에게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했다. 평소 성적이 뛰어난 아이이고 50문제 중에 한 문제 틀린 것은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엄마가 문제집을 보여달라고 하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과거 부모님을 잃은 상처와 충격이 금쪽이의 불안 지수를 극대화시켰고 자신의 결점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것에 굉장히 민감한 아이가 된 것이다.


금쪽이의 불안을 유발하는 두려움

1. 죽음에 대한 공포
2. 부모와 헤어지는 것
3. 부모의 사랑을 잃는 것
4. 물리적 힘에 의한 두려움
5. 비교나 비난에 대한 두려움      


금쪽이의 두려움 요인 중 5번-비교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은 금쪽이를 무엇이든 꼼꼼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아이가 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반대로 스스로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기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완벽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37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나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내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면 저 금쪽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숨죽여 울며 불안에 떠는 어린 아이.


완벽히 해낼수록

더 불안해졌다


입사한 지 1년, 2년이 지나면서 나의 책임감은 점점 커져갔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난 단언컨대 입사 후 5년 동안 매주 주말에 하루는 일을 했다. 다음 주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단 생각에 미리 일을 앞당겨서 했다. 그렇게 1주, 2주, 한달, 두달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주말에 일을 했다. 클라이언트 서비스를 하는 업무 특성 상 타 부서와 협업도 많고 예산이나 계약 같은 중대한 업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예민하게 일을 했다. 클라이언트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면 혹시나 잘못 보내지 않았을까 불안해하며 보낸 메일함을 수차례 확인했고, 혹시나 맡은 일에 실수를 했을까 봐 퇴근하다가도 회사로 돌아와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극도로 예민하게 일을 해서일까? 그다지 꼼꼼하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꼼꼼하다는 피드백을 받았으니 다행히 큰 실수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맡은 프로젝트의 규모는 커지고, 함께 일하는 후배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이 날 어떻게 볼까? 내 연차에 이것도 못한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 난 왜 이것밖에 못하는 걸까" 스스로 가혹할 만큼 채찍질을 했다. 예전에는 최선을 다하면 내가 원하는 정도의 퀄리티가 나왔는데,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해도 내가 내는 결과물이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나를 믿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일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혹시라도 실수하진 않을까, 혹시라도 클라이언트가 담당 자(=나)를 바꿔달라고 하진 않을까,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내 능력을 무시하진 않을까, 후배들이 나를 평가하진 않을까 등등..... 불안과 완벽주의 사이에서 나는 늘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리더들은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아무리 격려를 해주어도 그 말들은 내 마음에 새겨지지 않고 모두 튕겨져 나갔다. 불안이 날 지배하는 순간 그 어떤 말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길은 항상 너무 힘들다.
특히 제안, 경쟁피티가 있어서 더 부담스럽고 숨이 막힌다.
주말에 쉬었는데도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이번 주가 어떻게 지나갈까?

- 2019.09.16에 쓴 일기 중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37화 금쪽이처럼 나는 내 안의 불안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늘 두려워했고 조금이라도 나의 결점이 드러나는 것을 무서워했다.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나는 항상 일 잘하는 사람으로만 평가되길 바랬다. 그것이 나의 회사에서의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약이었으니까.


전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에 1년 정도 다닌 후 갭 타입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제야 나는 조금씩 알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완벽의 기준은 모두 상대적이라는 것을.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나의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채워준다는 것을. 회사는 팀원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서로 시너지를 내고, 가정은 가족 개개인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내가 무조건 모든 걸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 역시 여전히 불안과 싸우고 있지만 불안에 지쳐 이 글을 만나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불안해도 괜찮다고.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불안을 회피하거나 떨쳐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닌 불안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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