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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May 05. 2023

'그냥'의 힘

'그냥'이라는 단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말 큰힘을 품고 있다. '그냥'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였을 때 바로 드는 날 것의 것만 풀어내자면, 방향성 없이, 이유 없이, 그대로. 성의가 없어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이유 없이 순수하게 그 자체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로는 1.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2. 그런 모양으로 줄곧.,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라고 한다. 그럼 '그냥'이라는 단어는 좋은 것일까? 


사전적 정의 중 '1.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를 보면, '그냥'이라는 단어는 시간의 축적과 함께 쓰인다면 단단한 단어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에 나태해지기도 한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 사랑하는 사람과 연인이 되었을 때 잘하겠다는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옅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그 상태 그대로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나의 마음과 행동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느낀다. 오늘, 내일, 1년, 2년, 그 시간들이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무언가를 '그냥' 쌓아갈 수 있다면, 마치 나무가 나이테를 하나둘 만들어가며 단단해지듯 그 무언가에 대해서 단단한 내공이 생기지 않을까. 


두 번째 사전적 정의인 '2. 그런 모양으로 줄곧.'라는 뜻은 방향성과 어울린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를 같은 모습으로 계속 해나가는 것. 좋은 방향성을 가지고 계속 해나간다면 그만큼 강력한 힘이 되어줄 것이고, 좋지 않은 방향성을 가지고 '그냥' 하는 거라면 망망대해 위에 표류하고 있는 배 한 척 마냥 길을 잃어버린 상태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쁘게는 나를 해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떠오르게 한다. "자기는 내가 왜 좋아?"라는 질문은 연인 사이에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일 것 같다. 그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기도 하지만, 가장 막연하면서도 가장 잘 하게 되는 대답은 '그냥'이다. 좋아하는 데에 이런 이유, 저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냥 그대니까. 성의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쩔 때는 가장 로맨틱한 대답이기도 하다.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그냥'이라는 단어가 좋은 것이냐는 질문은 사실 우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가치는 나 혹은 사람들이 부여하기 나름이다. 다만, 그 뜻을 깊게 파헤쳐 보았을 때 '그냥'이라는 단어는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는 게 현답일 지도 모르겠다. 방향성을 갖고 시간을 쌓아가는 '그냥'을 내 삶에 갖고 있다면, 살아가면서 어느 것보다 큰 자산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연아 선수가 현역이던 시절에 했던 인터뷰가 있다. "어떤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냐"고 질문했을 때, 김연아 선수는 "그냥 한다"라고 대답을 했다. 짧은 대답에서 먹먹함이 있었던 것은, '그냥'이라는 단어에 담긴 그 깊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그냥'을 쌓아온 순간들이 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공부를 해왔고, 10년 가량을 일을 해왔다. 어렸을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공부를 해오기도 했고, 또 단순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일을 해오기도 했다. 그냥 공부하고 일을 해 왔지만, 그 시간들이 전혀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주 어렸을 때 습득한 지식들이 커서도 문득 보일 때가 있다. 한 분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에서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힘들을 좀 더 많이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것들을 '그냥' 하면서 차곡차곡 쌓아갈지, 이 글도 '그냥' 하는 것들의 밑거름이 되어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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