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토너> 리뷰
와 너무 훌륭한 소설이다.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날 이야기이자 한 10년에 한 번씩은 꼭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은 소설이다.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냥 그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이야기다. 악당을 물리치거나 멋지게 성공하지도 않는다. 그냥 살다가 죽는다. 삶에서 어떤 순간엔 기쁘고 성공적인 기분을 품고, 어떤 순간엔 슬프고 처연하다. 소신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불굴의 의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투지 같은 걸 지닌 인물도 아니다.
이게 뭐냐, 그러니까 우리가 환상을 갖게 되는 어떤 위대하고 멋지고 많은 걸 성취하거나 누리는 삶이 아니라, 아주아주 평범하고 우리 인생에 아주아주 가까운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시작부터 죽는 순간까지를 어렴풋이 훑게 되고, 그에 따라 각자의 감정을 품게 된다.
나의 경우는, 나는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품고 살기 때문에 이 주인공의 삶이 슬프다기 보다는 위대하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평범한 어른들처럼. 그런 것들이란, 삶이란 게 무슨 대단한 경연장이 아니라 어떤 작은 결정과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품는 작은 하루하루가 모인 여정이란 것. 그래서 중요한 건 단기간에 뭔가를 쟁취하고 명성을 얻고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보다 하루하루 좋은 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에 충실하되 그것이 성공이라 평가받는 대단한 성취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설사 가져온다 하더라도 또 그다음날, 그다다음날을 살아내야 함을 잊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도.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어느 순간엔 열정을 갖고 어느 순간엔 그저 주어진 불합리한 상황을 묵묵히 버텨내고 그냥 그렇게 살다 죽은 평범한 주인공의 일생에 공감하게 된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에 연민하게 되고, 그럼에도 긴 시간을 큰 틀에서는 만족할 수 있는 일을 누리며 살아온 것에 부러움과 존경심을 느끼기도 한다. 종종 앞날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이삼십년을 더 일해야 한다는 게 막막하고 미칠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부모님들만 해도 그렇게 긴 시간을 일하고 사랑하고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도록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스티브 잡스 같은 짜릿한 인물의 스토리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생을 걸고 열정을 불태워 뭔가를 성취해야만 가치 있는 인생일 것처럼 느껴질 때, 주변의 성공과 나를 비교하고 싶어질 때, 그럴 때 떠올려봄직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쩌면 살면서 아주 자주 스토너의 삶을 소환해야 할 것이다. 안티프래질처럼 삶의 어떤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공개되고 재생산되었지만 잊히기 쉬워 마치 인생의 비밀인 것처럼 여겨지는 오래된 금언 같은 소설이다.
오랜만에 문장 읽고 또 충격과 감탄을 선사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서평을 붙인다.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해서 어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 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토너처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이 사람 윌리엄 스토너처럼.”_신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