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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Dec 22. 2022

좋은 삶은 곧 좋은 죽음이다

책 <죽음이 물었다> 리뷰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죽음이 물었다> p.27


1. 할아버지는 건강한 음식을 드시고 매일 글을 읽고 운동을 하셨다. 우리는 모두 할아버지가 오래 사실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왔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배탈이 나서 잠깐 입원하셨다가 퇴원하니 전화를 드리라는 부모님의 연락를 받았다. 나는 평소 전화를 잘 하는 살가운 손녀가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전화를 걸었고, 할아버지는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퇴원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전화 말미에 말씀하셨다. "성공해라."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내게 해 준 마지막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상태가 악화돼 입원했고, 중퇴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는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몇 달 뒤였나, 조카가 태어났다. 가족의 첫 아기였다. 막 삶을 얻은 아기는 앞으로 더 잘 될 거라는 희망만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움직이고 소리를 내고, 세상을 받아들였다. 우리도 새로운 생명을 우리 삶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당시 나는 삶과 죽음이 내 인생에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는 그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조카가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즈음, 아기는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왜 그 두 가지가 내 세계에 공존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내 눈앞에 한꺼번에 펼쳐지자 당황했다. 나는 슬퍼해야 하는 걸까 기뻐해야 하는 걸까. 인생이 이렇게 이상한 거라면 왜 살아야 할까. 그런 기분이었다.


2. 내 아기가 태어난 지 8개월쯤 됐을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였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아기를 낳기 한 달 전쯤이었다. 아기가 너무 어려 못 가고,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그러다 다시 만났을 땐, 할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 아기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


외할머니도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할머니 다음에 아기랑 같이 갈게, 했는데. 다음은 없었다. 얼마나 누워 지내게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할머니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 하는 시간이 알아보는 시간보다 훨씬 길고,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한두달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치과에 다녀오던 할머니다. 외할머니도 내 아기를 보지 못하고 떠날 것이다.


반면 내 아기는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앞으로 잘 자라날 일밖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아기가 무슨 말이라도 새로이 뱉을 때면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친다. 아기가 커가는 모습에 매일 가슴이 벅차다. 아기 키가 훌쩍 자란 걸 알고 시간이 야속해지기도 한다. 아기와 함께 하는 삶 속에서 행복에 흠뻑 젖어든다.


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이것을 아이러니라고 느끼지 않는다. 죽음은 슬프지만 생은 기쁘다. 생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건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기쁜 것은 기뻐하고 슬픈 것은 슬퍼하면 된다. 사랑하는 아기와 함께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슬프다. 하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삶은 축복 그 자체다. 내 인생 전반에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는 것을 이제는 온몸으로 알고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할 수 있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또 우리를 더욱 연결되게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죽음은 당신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자신의 삶 속에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는 희귀하고 어쩌면 유일하기까지 한 체험을 제공해줄 것이다." <죽음이 물었다> p.136


3. 책 <죽음이 물었다>를 읽고 나의 이 같지만 다른 두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죽음과 탄생이 한꺼번에 내 삶에 들어왔던 두 번의 장면.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전혀 달랐다. 아이러니라고, 그렇기 때문에 삶에는 특별한 의미란 건 없는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내가, 이제는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임을 안다. 두 장면을 대하는 나의 전혀 다른 태도는 내가 변화했음을 알게 하는 지표다.


브라질 최고 완화의료 전문가인 저자는 암 등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사자와 가족을 돕는 일을 한다. 의료적 조치로 질병을 낫게 한다기 보다 심리적 지원을 통해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남은 날들을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그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결국 진실한 마음으로 현재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충실한 삶이다. 또 그는 그러기 위해 우선 죽음을, 그러니까 우리 모두 죽을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을 잊을 때 벌어지는 일은 이런 거다. 타인의 평가, 외부의 시선을 내재화하고 그에 흔들린다. 남들이 보기에 멋진 것들을 성취했지만 마음속이 공허하고 타인을 살필 여유가 없다. 너무 바빠,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한다. 지금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인간은 죽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하지만, 죽음을 속이기에는 너무 무지하다. 죽음의 날에만 죽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살아가는 모든 날들에 죽는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결여된 모든 날들에 더 빨리 죽는다. 우리는 죽음의 날에 앞서 버림받았을 때 죽는다. 죽음 후 잊혔을 때 죽는다.“ <죽음이 물었다> p.92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들 옆에서, 죽음은 무엇인지, 삶은 무엇은지 의료인으로서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환자를 도울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의 이러한 성찰은 삶의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제 나는 지금의 삶을 온전히 누리는 것 외에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없다고 믿는다. 물론 완화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큰 병이 걸린다면 당연히 두렵고 초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가서 삶의 진실에 당면하기보다 지금부터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리고 살고 싶다. 좋은 삶이 곧 좋은 죽음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삶이 주는 기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죽음이 물었다> p.94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삶은 우리가 그 시간 동안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체험이다. 날이 저물기를, 주말을, 휴일을, 은퇴를 기다리며 삶을 보낸다면 죽음의 날이 더 빨리 오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죽음이 물었다> p.107


4.사실 책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달랐다. 완화의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거라 생각했는데, 작가의 추상적인 생각이 담긴 에세이였다. 완화의료 현장에서 죽음을 만나는 일을 노동으로 하는 의사가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담은 책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아쉬웠다. 왜 이렇게 영성에 가까운, 손에 잡히지 않는, 누가 해도 상관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썼을까. 하지만 읽어가며 알게 됐다.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있다. 내 삶 속에 있다. 책은 내 삶에 있는 사람들, 죽어갈 우리들, 하지만 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존재being이며 그 존재의 과정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아야만 인간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의 날이 올 때까지 인간이 되기 위해 저마다 자신을 체계화하고, 발견하고, 실현해야 한다.” <죽음이 물었다> p.116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고료를 지급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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