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기 8일차
'멋져 보이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불편할 때가 있었다. 사실은 무인양품도 그중 하나였다. 뭔가 깔끔하고 꾸밈없어 보이고 일본에서 왔고 좋아보이는 디자인이 트렌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취향'으로 자리잡은 것 같았다. 그게 진짜 진짜 그 사람의 본질적인 취향일까? 걍 뭔가 달라보이는 일제라서 좋아하는 거 아님? 게다가 그래봤자 소비재일 뿐이잖아. 와 뭔가 겁나 스노비즘스러워. 라고 생각했음.
그런데 그것은 내가 무인양품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디자인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 때문에 가졌던 삐딱한 생각이었다. 디자인은 단순히 좋아보이는 것, 예뻐 보이는 것, 있어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인류와 자연을 대하는 어떤 본질적인 가치와 연관된 일이었다. 그리고 인류와 자연에 대한 올바른 가치가 감각적으로 실현됐을 때, 나아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정말 멋진 디자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걸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로 유명한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고 깨닫게 됐다. 책을 읽고 디자인이 무엇인지 디자이너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훌륭한 디자이너인 신씨가 왜 나한테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 역사부터 알면 된다고 말했는지, 왜 배상민 교수 이야기를 해줬는지 이해가 됐다. 특이점 옴.
물론 좋은 철학을 잘 표현해내기 위한 도구로서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디자인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란 거, 잘 보이려는 게 아니란 걸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소비되는 행태는디자인의 본질과는 약간 별개의 문제였다.
여튼 세상에는 좋은 에디터와 그냥 그런 에디터, 좋은 글쟁이와 그냥 그런 글쟁이가 있는 것처럼 좋은 디자이너와 그냥 그런 디자이너가 있는 것 같은데, 좋은 디자이너들은 철학자이자 인류애를 가진 인간들이자 약간 다른 관점을 가졌고 어쩌면 세상의 많은 것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디자이너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훌륭한 사람들인 것 같구만.
나는 문자라는 도구로 표현하고 소통하고 구매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나도 어쩌면 이 문자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카피들, 잘 정리된 문장, 핵심을 잘 전달하는 기술을 넘어 이 도구를 통해 세상에 미칠 좋은 영향들을 나의 미션으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