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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Nov 12. 2018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리뷰

뭐라도 쓰기 11일차

일기쓰기란 이유를 찾는 과정 같다. 삶의 이유이든 일하는 이유이든 뭔가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의 이유.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맥락을 만든다. 요즘 말로 브랜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매우 큰 디자이너가 되어버린 나가오카 겐메이씨의 일기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도 나카오카 씨의 이유 찾기 여정에 대한 기록이었던 것 같다. 인간으로서, 디자이너로서, 경영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존재의 이유, 역할의 이유, 행위의 이유 등 다양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루 약 20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 나가오카 겐메이씨가 자칭 '디자인 활동가'로서 밖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활동의 맥락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됐다.  


당신다움, 일본다움, 한국다움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 돈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에 입수하는 것도 무리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매우 짧은 시간에 간단히 이루어진다. _서문 중


요즘 나는 맥락이란 것에 매우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대이기 때문이고, 흔들림이 본질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단단하지 않고, 지금 보기에 단단한 성공을 쌓아올린 것 같은 사람도 때로는 흔들린다. 그런데 요즘 시대의 흔들림이란 예사롭지 않다. 세상을 지탱하던 여러 가지 종교와 신념과 안정성이 사라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지탱하던 여러 가지 종교와 신념과 안정성 없이도 내면을 채울 수 있는 자신만의 맥락을 다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혹은 배우려 하지 않았다.

나는 맥락있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맥락은 위의 인용문처럼 단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름 값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있어 보이는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원래부터 가진 것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 나와 내가 하는 행위와 내가 하는 생각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내는 절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상은 참 그런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매일 매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은 스스로 의식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바심을 낸다. 맥락보다는 단기간의 성공에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이 나온다.


연륜 있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씨도 '좋은 디자이너가 무엇인가요?'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잊고 살 때가 있고, 그 질문이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이 환기하는 것은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 직업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존재의 가치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이유를 고민하며 다진 맥락에서 그 답이 나온다. 이에 답하지 못한다면 계속 맴돌기만 할 것이다. 그 맥락을 다지지 않고서는 영원히 흔들리기만 할 것이다. 멋진 옷을 입더라도 영원히 멋있어지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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