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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 회복을 위한 엄마의 처절함, 영화<나를 찾아줘>

최소한의 공권력마저 부재한 공간에 놓인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고민

한국영화 기념비적인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의 금자 씨가 1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평범한 대사마저 뻔뻔하지만 역대급 고급스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소화하며 '이영애가 이영애 하다'라는 문장을 이미 오래전 완성한 배우 이영애. 그가 6년 전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서는, '엄마'로 다시 돌아왔다. 


헝클어진 머리와 함께 크고 작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채 외딴 부둣길을 걷고 있는 '정연'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나를 찾아줘. 과연 정연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걸까?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정연'(이영애 분). 그는 6년 전 놀이터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윤수를 잃어버렸다. 그의 남편은 윤수를 찾기 위해 생업을 중단하고 전단지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고있지만, 정연은 생계를 위해 애써 끓어오르는 감정을 삭히고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낸다. 그의 병원 후배는 그런 정연을 보고,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 치고는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며 '대단하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정연이 얼마나 큰 죄책감과 상실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매일 그의 아들 윤수가 돌아오는 꿈을 꾸고, 지친 육아 때문에 일주일 정도 아이가 잠깐 어디론가 가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과거의 어느 날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이보다 더 바닥이 있을까 싶은 어느 날, 유일하게 의지했던 그의 남편도 신기루같이 사라지고 정연에게 의문의 전화 한 통이 온다. 그의 아들 윤수가 낯선 섬에서 살고 있다는. 제보자는 성공수당까지 요구하며 그의 아들 윤수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이야기하며 윤수의 화상흉터, 며느리발톱까지 윤수만의 특징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렇게 정연은 이번에야말로 아들 윤수를 찾아 반드시 같이 집에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아들 윤수가 있다는 낯선 섬을 홀로 찾아간다. 


외지인 '정연'을 극도로 경계하는 만선 낚시터 사람들. 그곳에서 정연은 철저히 혼자다


의문의 제보자가 말한 낯선 섬은 보통의 관광지와는 다르다. 관광지 특유의 설렘, 두근거림, 왁자지껄한 분위기보다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윤수가 있다고 추정되는 '만선 낚시터'의 사람들은 전단지 하나 들고 찾아온 외지인 정연을 극도로 경계하며 윤수 같은 아이는 이곳에 없다고 강조한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그들의 수상쩍은 말과 행동에 정연의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화하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숨긴 자신의 아들 윤수를 찾아내려 한다. 과연 정연은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 윤수를 찾을 수 있을까?


영화 <나를 찾아줘>의 기본 줄거리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영화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표현하기에는 엄마 정연의 '추적'은 조금 단순하게 보인다. 조금은 맥이 빠질 정도로 영화 초반부터 정연은 6년 동안 전국을 헤매며 찾았던 아들 윤수의 위치를 쉽게 파악하고, 그를 숨기고 있다고 보이는 만선 낚시터 사람들과 정연의 갈등 혹은 대결 역시 치밀하게 진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한 장면. 영화 나를 찾아줘 홍경장처럼 김복남의 남편은 폭력으로 마을을 지배한다. 


중요한 건, 아들 윤수를 찾기 위해 정연이 자진해서 들어간 외딴 섬마을이라는 '공간'이다.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한가롭게 앉아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만선 낚시터'는 평화로운 겉모습과는 달리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권력'마저 존재하지 않는 폭력의 공간이다. 배우 이재명이 연기한 '홍경장'은 마을의 안전을 담당하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힘을 무기로 군림한다. 회유와 협박을 적절히 사용하며 만선 낚시터를 장악하고 스스로의 왕국을 만든 것이다. 최소한의 원칙마저 없는 '만선 낚시터'에서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은 생명, 자유와 같은 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박탈당한다. 


이는 영화 '이끼'에서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다. 세 영화 모두, 외딴섬 혹은 외딴 마을이라는 공간은 법과 원칙이 부재하고 대신  '이장' 혹은 '폭력 남편' 혹은 '홍경장'이라는 폭군이 자신만의 원칙대로 공간을 지배한다. 특히 세명 모두 자신을 포함한 공간의 모든 사람들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뻔뻔히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엄연히 말해서 그들은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아니라 '법 없이 사는 사람' 즉, 무법자이다. 그 과정에서 모든 피해와 책임은 약자인 여성과 아이가 감당해야 한다. 


자신과 아들 윤수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홀로 나서는 정연


결국 정연은 짓밟힌 자신과 자신의 아들 윤수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악마 같은 홍경장과 만선 낚시터의 사람들과 홀로 싸우며 악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영화 나를 찾아줘를 단순히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엄마의 영화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폭력의 공간에서 버티고 버티다 상황을 해결해줄 외부인을 치밀한 전략 하에 불러들이거나 스스로 낫을 들어 전쟁에 나서는 이끼의 영지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김복남처럼 나를 찾아줘 정연 역시 홍경장과 만선 낚시터 사람들이 짓밟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 윤수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처절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마저 우아하게 소화했던 배우 이영애의 변신이 와 닿고, 그렇기에 단순히 모성애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정연만의 '무언가'가 부족한 영화 나를 찾아줘가 아쉬운 이유다. 

결국, 나를 찾아달라는 아이의 절규와 그 절규를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엄마는 '강하다'는 도덕교과서 같은 메시지와 함께 자신과 아들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나서는 엄마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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