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으로서 한국고전영화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 또래들 중 영화를 깊이 공부해보겠다는 이는 적고, 그중에서도 고전을, 그것도 한국의 고전에 관심을 갖는 이는 더더욱 적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힙스터'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한다. 쉽게 말하자면 비주류 문화를 좇으면서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여기고 싶어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의도치 않게 힙스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가진 관심사들은 허영심과 우월감만으론 사랑하기 어려운 탓이다.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줄곧 좋아했다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시나리오라는 형식의 글들은 큰 충격을 안겨줬다. 영화를 위한 일종의 보조적인 글로 여겨질 수 있으나, 무엇보다 직관적이고 생명력이 느껴지던 시나리오들은 마치 내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따라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영화를 여러 번 제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영화감독이라는 진로에 대해 확신은 비교적 늦게 가졌다. 워낙에 어려운 직업군인 데다, 갖춰야 할 재능을 많이 요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학교에 오는 것이 맞았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나지 않던 고민이 데려다준 결론은 내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학교에서 내 이름을 건 영화 하나는 만들고 결정하자고 다짐한 뒤, 각본을 쓰고 장비를 빌렸다. 배우까지 6명, 마음 맞는 친구를 여럿 모아 <카스트>라는 이름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날 심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일들이 겹쳤고, 배우 중 한 명은 촬영 도중에 장염에 걸렸다. 스태프 중 일부는 학원을 병행해야 했기에,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동시에 맡아야 하는 일도 발생했다. 정말 정신없이 진행됐지만,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과 각본만이 그런 나를 지탱해줄 수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되었고, 한편으론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편집을 위해 촬영분을 검토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촬영할 적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친구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이 영화에는 분명 나의 흔적이 있었지만, 내가 알던 나는 아니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온전히 내 것이라고 느껴졌던 이 작품이, 촬영을 거치면서 수많은 이들의 기적들이 교차하는 순간만을 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글을 줄곧 쓰고, 다른 이들의 영화를 보조만 했던 나는 내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의 본질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카스트>는 영화제에서 입상할 수 있었다. 예상외의 결과였다. 다른 영화들처럼 전문 배우들을 고용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흑백영화였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취로만 여기던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다. 촬영만은 큰 문제없이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내게 과분한 상으로 느껴졌다. 영화에 참여한 이들은 나보다 더 기뻐해 줬고, 작은 고민에서 시작한 이 작품이 내 마음속에 돈으론 살 수 없는 깨달음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나는 그 기도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공부하기로 했다. 영화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감상한 영화 편수는 1000편을 넘어갔다. 추상에 그쳤던 내 영화 취향도 어느 정도 그려졌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감독,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하나둘씩 섭렵하며 영화들을 분석했고, 전공도서들과 영화감독들의 자서전까지 손을 뻗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영화를 알면 알수록 내 안은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전영화는 왜 봤냐고? 지금 이야기하려 한다. 고전영화에 발을 들이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을 따라가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안목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보고 자랐고, 그가 자라면서 봤을 영화들은 지금에서야 고전으로 평가받을 연륜을 갖추게 된다. 오늘날 활동하는 모든 영화감독들은 고전의 영향 아래 지배받고 있다. 선대의 감독들이 성립시킨 장르들과 메시지들은 후대의 감독들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그 흔적들을 남길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감독들을 따라가다 보니 김기영 감독을 알게 됐고, 유현목 감독을 알게 됐고, 이만희 감독을 알게 됐다.
한국영화의 뿌리는 우리 사회를 담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한국영화사는 세대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분명 지니고 있다. 내가 느낀 그 무언가를 알기 위해 나는 한국 고전영화를 본다. 분명 오늘날과는 다른 문법을 가진 영화들이 많지만, 그들 중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빛을 좇는 나방처럼 나도 그 빛을 좇아서 시간여행을 한다. 그 시간여행은 외롭지만 황홀하다. 열악한 보존환경을 갖고 있던 한국사회를 헤치고 살아남은 한국고전영화들은 찬란함을 간직하고 있다. 찾는 이조차 많이 없기에 의무감마저 든다.
내가 매거진을 <당신은 모를 한국고전영화>라는 도발적인 이름으로 선정하는 데에는 그 의무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내 글들로 누군가가 한국고전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만들어질 나의 영화들에 거장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내가 이전에 <카스트>에서도 느꼈던 기적들을 더 찬란하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당신은 모를 한국 고전영화'가 아닌, '당신도 아는 한국고전영화'로 불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