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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May 10. 2021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2020).

지금 주목해야 할 영화들 #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님이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거두셨다. 사실 영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재작년부터 <기생충>으로 이어진 한국영화의 국제적인 활약상은 나로 하여금 거대한 동력원이 되어 준다. 한국영화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이 코로나 19로 위축된 한국 영화계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들의 수상은 분명 그 어느 때보다 더 값지고 의미 있을 것이다.

  윤여정 배우님만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 중 한 명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를 오늘 감상하고 왔다. 이전에 미국에 여행을 다녀왔지만, 보고 난 뒤에 다시 가고 싶어 졌다. 넓은 땅만큼이나 못 본 풍경이 너무나도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적은 중국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미국에서 자란 클로이 자오 감독이 느낀 미국의 풍경은 더 다채롭고 결핍이 내재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매드랜드>의 배우 대부분이 실제 노매드들이라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일반인에게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디렉팅을 했을까 상상하면서 감상하니 눈도 바쁘고 머릿 속도 바빴다. <노매드랜드>가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기에 원작을 구해볼까 고민 중이다. 글을 다 쓰고 난 뒤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결론이 내려질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경제에서 낙오된 이들의 여정에는 거주지가 없다. 대신 집이 있다. 집은 그들과 항상 함께 한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밴은 그들의 터전이자 가족이며 삶 그 자체다. 한국에선 '집'으로 함께 통칭되는 'Home'과 'House'의 개념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전에 유랑생활을 같이했던 이웃과의 대화에서 'House'가 없을 뿐, 'Home'은 있다는 펀의 말은, 그녀에게 밴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엿볼 수 있다.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인 펀은 밴이라는 의지할 곳과 함께 유랑하는 인물이다. 유랑을 하면 할수록 의지할 곳은 닳아간다. 펀의 아버지의 그릇들을 데이브가 깨뜨렸던 것처럼 그녀가 애써 붙잡던 과거들은 이어지는 현실들과 부닥치며 위태롭게 유지된다. 펀이 노쇠한 밴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처럼, 깨져버린 그릇은 펀에 의해 본드로 다시 형태를 되찾는다. 인물의 심리와 시간의 흐름은 서로 상충하며 극 내내 안타고니스트 없이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펀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기억을 유랑하다 만난 투병 중인 스완키를 통해 다시 재회하고, 데이브의 가정에서 'House'의 기억을 재회하며 이전에 살던 집을 찾는다. 반지와 같이 끝이 없고 반복해서 찾아오는 기억들은 정착지를 두지 않는 펀의 삶을 닮았다. 이별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음부터 정착을 거부하는 펀의 태도는 인연에 대한 회피이자 극복으로 완성된다.

  같은 노매드임에도 펀과 대비되는 스완키와 데이브는 영화 속에서 유랑을 멈춘 인물들이다. 스완키는 죽음으로 유랑을 멈췄고, 데이브는 정착지를 정함으로써 유랑을 멈췄다. 이 둘은 펀의 선택지를 상징한다. 펀과 데이브는 공룡을 두고 대화를 나눈다. 태고를 지배했던 생물에게서 펀과 데이브는 과거를 떠올린다. 데이브는 과거를 이겨내고 가족을 찾아가 가정을 되찾은 뒤에, 'House'로 펀을 초대하며 미래를 그린다. 그러나 펀은 데이브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정착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계속될 유랑, 펀은 이별과 이별하지 못하고 있다. 펀은 아들을 잃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떠도는 노매드들을 돕던 밥과 대화를 나누며 기억을 공유한다. 이별을 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이들과 공유하는 기억들은 치유력을 지녔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노매드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로를 받고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삭막한 사막을 뒤덮는 아름다운 노을들, 그리고 펀을 정화하는 바다의 파도들은 인간의 영역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인연과 이별의 초월된 모습을 보여준다. 지는 태양과 사그라드는 파도들은 다시 만날 인연을 예고하며 노매드들의 삶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펀은 사람들을 만나며 'Home'의 영역을 밴 이상으로 확장시킨다. 앞으로 찾아올 인연들과 자신을 지탱해줄 과거들이 펀의 확장된 'Home'의 영역이 될 것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에선 이안 감독의 영화처럼 공동체 속의 방황을 그리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자신의 출신지인 중국과 어렸을 적부터 자란 배경인 미국 사이에서 '진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그녀의 행선을 닮았다. 곧이어 <이터널스>로 또 다른 도약을 예고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작품세계를 지금 극장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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