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책방 깊숙이 파고드는 순간. 하늘은 바다색이다. 딱히 이 색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 그 빛에 눈길을 주며 주은 씨가 알려준 청년지원사업을 생각한다.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면 좋을 텐데. 딱히 동아리 지원이 아니면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은 없다.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고 그다지 빠르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슬그머니 목으로 차오르는 기운에 깜짝 놀란다. 무익한 분노였다. 지역신문을 읽으면서 만나는 괴리감. 지역사회에서 분노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무익함이다. 지난 선거로 지역 정책이 바뀌고 생태 도시는 더 경제성장을 위한 일에 힘을 싣는다. 개발 경제 신화를 아직도 열망하다니. 코비드 시절이 준 변화된 환경에 감탄하던 마음은 흔적도 없다.
겨우내 잘린 나뭇가지만 보이던 가로수에 연둣빛 점들이 무수히 돋아나 있다. 언제부터 시작된 봄이었지? 아직 이른 아침 기운은 차가운데 땅은 따뜻해지고 있었던가. 보이지 않는 땅 아래 일까지 알아차릴 수 없는 생명체로도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다. 무심함으로 이어가는 삶이다.
나무가 건네는 신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무 이름도 알지 못한다. 서울에 늘어진 가로수 이름도 모른 채 27년을 살았다. 이런 나를 발견하는 일에 피로감을 만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넘친다. 이것도 무익한 분노다. 하지만 무익하다고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들로 내 세상을 짓기로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돌킨이나 조앤 롤링, 어슐러 르 귄처럼 세계를 구축하지는 못한다. 그야말로 현실 세계에서 살아있으니까. 이 현실은 인류가 구축했다고 여기는 문명사회이고 다수의 오류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버티고 있다. 굳건하고 의미심장하게 효율과 합리성, 이성을 강조하고 깊이 묻어야 하는 감정을 방치한 채로.
판타지 세계는 머릿속에서 만들어지지만 나는 한 칸 책방에 내 세계를 담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하는 세상.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내게만은 그렇다. 시간을 거슬러 가거나 빙의하거나 장르 소설이나 게임 서사에 열광한 트렌드, 그 어떤 것도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 짠하고 얼굴을 들이밀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습관적으로 오늘도 빈 우편함을 확인한다. 이 무력감에 번지는 무익한 분노.
볕 좋은 곳에서 쉴 수 있는 준비까지 마치고 자전거를 꺼낸다. 도착하는 곳은 두 다리가 아파서 더는 페달을 밟기 어려울 순간 멈춘 곳으로 한다. 달려야 정신이 맑아질 것 같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도 떠내려 보내고 어서 하루가 지났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