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어김없이 해마다 정윤이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니, 혼자 기억하기로 할게. 그렇게 지나온 세월, 그동안 내 편안함을 우선하던 마음은 사라졌다. 사실 정윤에게서 올 연락을 기대했나 보다. 인턴으로 바쁜지 통 연락이 없다. 더 이상 그도 광장으로 나가지 않나 보다. 아니면 내게 더는 기대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정윤은 스물일곱이면 무관심할 때도 되었다고 말할까.
4월이 되자 세월호 노란 리본이 가슴속에서 펄럭인다. 더는 이 마음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9주기를 맞아 또래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들 역시 나처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책방에서 9주기 기억하기 행사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뜻이 있다면 길은 만들어진다. 독서모임 회원들과 마을학교 활동을 하는 어린 친구들도 참여해 기억하기를 이어가려 한다. 지역밴드에 홍보를 해서 같이할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
반복되지 않아야 할 사회 참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역시 국가는 직무 유기 상태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일에 책임을 묻는 것에 왜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 그럭저럭 넘어가도 괜찮았던 과거사가 여전히 울부짖고 있는데 과거는 지나간 일로 그쳐버리는 것일까.
한 개인에게도 과거는 잊히고 마는 것은 아니었다. 늘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흔적을 들이댄다. 지나온 일은 서서히 되뇌며 풀어나가야 할 검은 덩어리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난해까지는 혼자 어슬렁거리며 안산시를 다녀왔다. 단원고 기억교실과 기록물 전시관을 둘러보고 추모하는 일조차 부끄러웠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회 이슈로 관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내가 학창 시절 현실에서 배운 것은 이 사회에 결코 희생당하지 않겠다는 마음먹기다. 국가라는 이름이 가진 허구와 민족주의라던가 시민 사회라는 말은 허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절반도 안 되는 시민으로 전체를 담아 시민사회라고 말해버리는 오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수결 오류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현실에서 내가 살아가는 일에서만큼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거대한 전환을 도모할 역량도 없다. 내 한걸음이 가져올 작은 변화가 나로부터 가능하다는 믿음만은 잃고 싶지 않다. 지역에서 하는 마을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뜻이 있는 선택이고 잘 해내야 할 일이다. 마을공동체가 책을 도구로 아이들을 돌볼 가능성이 늘어난다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하기는 혼자가 아니다. 2014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세월호 리본을 보더니 가방에 매달겠다고 손을 내민다. 이번 기억하기는 9년이 되기까지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는 일로 뜻깊은 날이 될 것 같다. 십시일반 소신껏 자금을 모아 작은 현수막도 만들고 영상촬영도 해서 유튜브에 올리기로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멀리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덜 외롭지 않을까. 나는 고군분투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 해에 나는 아빠를 잃었고 대한민국 고3 수능생으로 살아가는 일에 충실한 척하던 것을 기억한다. 애도할 수 없었던 내게로 이어지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스물까지 집어삼켰다.
타인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월이 지금에 나를 붙들고 있다. 현재는 회상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죽음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지쳐갈 때쯤 정윤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자정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 메시지를 보내놓는다.
세월호 9주기 기억하기는 책방에서 하려고.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숫자 알림이 뜬다.
주말이니까 책방으로 갈 게. 행사에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줘. 챙겨서 갈 게.
메시지를 읽으면서 뜬금없이 눈물이 흐른다. 정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안심과 멀지만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내 몸이 반응하는 밤이다. 오랜 세월 같이한 사람이 건네는 마음은 기운을 돋우는 사람 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