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세 글자가 남기는 여운은 언제나 푸르다. 공간을 채워가는 사람이 주고받는 넉넉함. 그것이 삶에 작용하는 기운은 유별나지 않지만 은근하다. 독서모임 회원들과 기본소득 공부하는 또래, 가끔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주변 어르신들.
평생학습센터 지원에 힘입어 마을학교가 열리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여기도 별 차이는 없다. 다양한 경험을 열어가는 중에 책 읽기가 없는 상황은 일상처럼 되어 있다. 책을 벗 삼아 살아온 내게 가장 눈에 띄는 일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지 어른이 되면서 더 절감하고 있다.
그래도 주변에는 여전히 책 읽기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마을학교를 이어갈 기회가 열리기까지 애쓰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내게는 아주 특별한 마음이라 큰 힘이 된다.
책과 가까워지는 일은 사회분위기, 시대정신과 같이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놓인 상황은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결과가 중요한 성적 위주 평가로 진행되는 입시제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역 사회도 교육 제도를 충실하게 따른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부모들은 공부방과 학원으로 아이를 보내려고 한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선행학습과 경쟁 사회가 주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책 읽기는 삶이 지속되는 중심에서부터 성장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내림에서 비롯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우선인 사회에서 느리게 읽고 이해하는 과정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 사회에서 성장해 온 우리들에게 인성 타령이나 하고 싸가지가 있네 없네 하는 어른들이 하는 말은 공허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책 읽기 습관은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랄까. 희미하지만 내게는 늘 실재하고 있는 푸른 꿈이다. 막연하고 불확실하고 가능성도 없는 것 같은 희망 품기.
그래, 다시 또 하나 시작이면 된다. 철학동화 읽기로 마을학교가 다음 주부터 책방에서 열린다. 8명이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몹시 설렌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일을 잘해 낼지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온종일 붕붕 떠있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이곳에서 마구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소식을 들은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좋아하며 웃는 얼굴이 목소리 너머로 가득해진다.
우리 재인이 잘할 거야.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이야기하는 거 좋아했잖아. 우리 딸이 잘할 일이네.
성급하게 미리 판단해 버리는 엄마 목소리도 이제는 좋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엄마가 보내주는 응원금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으니까.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진다. 왜 그리도 엄마에게 야박했을까.
아무도 네 꿈이 뭐냐고 묻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푸른 꿈을 꾼다.
[브런치북] 수상한 책방 01~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