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32.

포트럭 파티

by 이창우

책씻이하는 날. 드디어 우리는 <<기본소득 101>>을 다 읽었다. 서로 잘 해냈다고 기운을 돋우자는 의미로 작은 포트럭 파티를 한다.


서연 씨가 가져온 샹그리아는 스페인에서 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히려고 만들어 마시는 과일주다. 레시피를 알려주며 여분의 재료를 더 가지고 왔다. 아직 더위를 느끼는 계절은 아니지만 레드 와인에 사과와 오렌지, 레몬을 잘게 썰어 미리 만들어 놓으면 과일 풍미가 레드 와인에 스며들어 목 넘김에서 취기까지 마음에 드는 알코올음료다.


엄마가 즐기는 와인에 관해 철학을 전공하는 내게 읽어보라고 한 <<와인의 철학>>을 받으며 심드렁했던 순간이 스친다. 와인이 한국사회에서는 일상 모임에 들어와 있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소주의 철학이 가능한 사회잖아. 소주의 철학은 내가 써야 하나? 질색하는 소주로 철학을 한다면 한국사회 진면목이 나올걸? 엄마 앞에서 못되게 굴던 순간도 어디 들어가 있던 기억인지 튀어나온다. 그 순간도 엄마는 웃기만 했다.

한국인의 술이 된 소주조차 한 개인의 선택이고 보니 음주문화와 관련한 철학은 가능하다. 언젠가는 술 마시기 철학서를 쓸 수도 있겠지. 소주보다는 맥주에 친근하고 그때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이 술 선택이고 보면 삶도 상황이 주는 순간으로 선택되나 보다.


<<와인의 철학>> 저자는 와인을 가까이하게 된 순간부터 삶의 전환을 맞기도 했다나. 술이 건네는 손짓도 개인마다 다양하게 스며들기에 누구나 꺼낼 삶의 이야기가 있겠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어쩌면 술 덕분에 겉으로 표출되는 기회는 있으니까.


<<와인의 철학>>은 유럽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다. 언젠가 나도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상으로 나의 철학을 풀어낼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 어차피 무엇의 철학에서 '무엇'은 개인의 선택이었다.


은주 씨는 집에서 엄마가 만들었다는 수제 돈가스를 가지고 와 에어 프라이를 이용해 저녁을 배부르게 해 주었다. 나는 가지고 있는 치아바타와 같이 먹을 스파게티를 만들었는데 풍성한 만찬이 되고 말았다. 요리를 나눠 먹으면서 다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평소 만족감을 더 높여 준다.


요리를 하는 일은 혼자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요리가 주는 힘은 더 커진다. 사람을 잇는 공간에서 마음까지 서로에게 닿을 기회까지 준다. 지금도 친구들과 나누던 음식들은 여전히 그 순간 같이 한 친구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모두를 위한 카레라이스를 만들 때면 요리하는 나로서는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기쁨이 전부였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먹지 않으니까. 맛을 내는 것은 어쩌면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쏟는 내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2주에 1회 만남이 아쉽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더니 매주 만남으로 바뀌고 만다. 앞으로 포트럭 파티는 책씻이하는 날로 결정하고 부지런히 다음 책을 읽어내기로 한다. 다들 부족한 시간을 내서 책 읽기에 열심인 두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시간이 넘치기에 책 한 권 읽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직장 생활을 하는 주은 씨를 만날 때면 느끼게 되는 감정은 또래에게서 접하지 못하던 이타심이다. 서연 씨는 지역 축제 기간이 가까워 단기 아르바이트가 줄을 잇는다면서도 책 읽기를 우선으로 하게 해 주어 좋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 나에게는 더욱 좋은 일인 셈이다.



[브런치 북] 수상한 책방 0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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