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배신

시간을 거슬러 08.

by 이창우

휴머니즘은 가난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것인가. 『가난한 휴머니즘』은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아리스티드는 1980년대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가장 큰 빈민가에서 정치적으로 바른 소리를 잘하는 신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아이티 민중을 괴롭히던 뒤발리에의 독재 정치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 아이티 민중의 희망을 담고 있는 메시지,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확실한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아리스티드의 교회로 이끌었다. 그는 1990년, 아이티 최초의 민주적 대통령 선거에서 67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7개월 뒤, 군부 쿠데타로 아리스티드는 망명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미 해병대 2만 명을 아이티에 파견했고, 귀국한 아리스티드는 쿠데타의 주범이었던 군대를 해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떠나고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 2000년 92퍼센트의 압도적 지지로 아리스티드가 재선에 성공했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인상시켰고, 정부 보조금을 지급해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다. 학교 건립과 문맹률 저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선거에서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을 문제 삼아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는 아이티에 제공하기로 한 경제 원조를 연기했다.


2003년 2월 29일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 관저를 점거하고 아리스티드의 퇴임을 강요한다. “당신이 물러나지 않으면 아이티는 피로 물들 것”이라는 위협에 아리스티는 한밤중에 비행기에 실려 중앙아프리카로 가야 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아리스티드는 아직도 남아공에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지구화에 맞서고 있다.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에게 미국과 유엔평화유지군들이 어떻게 했는가, 아이티의 역사가 말해준다. 강대국이 지향하는 세계화의 실상, 한국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2010년 대지진으로 대참사가 있었던 아이티에서는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장례식도 없이 쓰레기들과 함께 그냥 구덩이에 묻혔다고 한다. 대지진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카리브해의 최빈국 아이티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한국사회의 주변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멈추어야 했을 고리원전 1호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가는 여기, 멈추지 않는다면 대참사를 비껴갈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원전의 확대를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계속하고 있다. 한국을 두고 중국과 미국, 일본의 움직임들, 쌀시장 전면 개방, 이 땅에도 휴머니즘은 중병으로 신음하는 중이다.


쿠데타 이후 아리스티드 지지 세력에 대한 탄압과 폭력은 계속 됐고,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주둔한 유엔군 역시 점령군으로서 아이티 민중에 대한 인권침해와 무력 탄압을 계속했다. 이런 역사의 시간을 지나온 아이티는 현재 카리브해 최빈국으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적, 콜레라와 싸우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의 지원이 강화되면서 올해 상반기 5개월간 발병률이 전년 대비 7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다행히 콜레라로 인한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 지난 수년간 콜레라로 고통받는 아이티 국민들을 위해 보건환경 개선 등 유엔과 회원국들이 새로운 지원을 약속했다. 아이티의 현재를 지원한다는 그들이 바로 아이티의 존엄을 깔아뭉갠 자들이라는 아이티의 역설은 한국사회에서도 비껴갈 수 없다.


아이티의 민중들은 늘 투쟁하고 싸워왔다. 이런 아이티 환경에서 늘 무사하고 대지진도 피해 가는 곳은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현실이 있다. 신이 있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할 수 있는 이들은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정부는 쌀 관세화 유예 대신 높은 관세 유지를 통해 쌀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 어떤 협상의 노력 끝에 나온 발표도 아니었다. 당장의 어려움만 모면하면 뒷일이 어떻게 되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왔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발표에 '식량주권 포기'라는 구호가 어찌 농민들만의 이야기일까. 한국사회에 정당은 있어도 정치는 없다.


세계 시장의 통합을 뜻하는 ‘지구화’는 가난한 이나 부자에게나 소비할 상품과 오락이 넘쳐나는 지구적 문명으로 “모두 데리고 가겠다”라고 했고, 물질적 풍요를 약속했다. 실제로 1980년 이후 대부분 제3세계에서는 지구화를 받아들였다. 제3세계에서는 그들의 경제 공동체를 세계에 열어 주었으며, 관세를 낮추었고, 자유무역을 수용했으며, 선진국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사들였다. 세계는 서로 좀 더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간격은 더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유무역을 받아들인 뒤 가난한 나라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아이티에서는 1986년에 이 나라의 주식인 쌀을 7천 톤 수입했다. 아이티에서는 대부분 넓은 지역에서 벼를 재배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아이티는 국제 금융 기구가 주도하는 자유무역 정책에 따라 쌀 수입 관세를 올렸다. 그러자 쌀농사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의 값싼 쌀들이 곧바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일단 외국쌀에 의존도가 높아지자 쌀 수입 가격이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티를 떠나는 인구, 특히 도시 빈민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는가 하면, 높아만 가는 세계 곡물값 변덕에 장단을 맞추어야 했다. 그러고도 값은 계속 오르기만 했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으며, 여성, 어린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역사의 객체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아이티 역사는 말한다. 한국의 역사도 같은 길을 걸어왔고 아직도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일에 투쟁 중이다.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방법은 각 나라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균형과 견제, 이 둘 모두를 얻고자 하는 각 공동체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선출된 지도자의 잠재적 배신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다. 인류는 역사에서 과오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고 진보를 배운다.


휴머니즘은 가난을 나누는 것이다.


2014. 7. 23.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가난한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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