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충돌하는 개인

시간을 거슬러 11.

by 이창우
굳이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것은 위대한 비밀이며 다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기술도 필요 없으며 오로지 순수한 마음과 정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의식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 이상의 비밀은 없다.

- 『무엇을 할 것인가』중에서-


이 작품은 저자인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끼가 수용소 생활 중 1863년 발표한 대표적인 사회·정치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중 베라 빠블로브나, 로뿌호푸, 끼르사나노프, 라흐메또프는 1840년대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도덕적 정열을 지닌 합리적이고 유물론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구시대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이익과 사회 전체 이익이 일치한다는 <합리적 에고이즘>의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는 인물들이라고 역자는 밝힙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 시대에서 접하기 힘든 ‘특별함’을 겸비한 인물들입니다. 그럼에도 그 인물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그 특별함을 삶에 적용시켜 갈 수 있는 행운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러고 보니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행운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적잖이 행운아라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내게로 온 그 행운들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모두의 ‘선’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특별함은 현재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도 여전히 요구되는 것이기도 했기에 위대한 고전이라는 ‘스테디셀러’의 힘은 역시 보편타당함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싶은 거죠. 그래서 우린 고전 읽기를 멈추어선 안 되고 특히나 젊은 세대에게 메아리로 되돌아와도 떠들 수밖에 없나 봅니다. 한국 사회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의 원인은 책을 읽는 이들을 주변에서 찾기 힘든 것에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부디 과장이었다면 싶은 심정이니 스스로 판단해 볼 일이겠지요.

소설 속 중심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유형들이기도 합니다. 그 인물들이 펼치는 대화는 개인 삶과 결혼의 의미, 사랑과 자유, 가족과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 공동의 선을 향한 이야기들로 그 방법론을 작가 정신에 따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결혼은 형식에 맞추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내용에 있는 것인 지를, 타자가 아닌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이었는지를 묻죠. 대부분 여성의 결혼은 그 시대 사회 관습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지만 작가는 주인공 ‘베라’를 통해 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려 합니다.

작품이 출간하고 한 세기 반이 지난 우리 시대에도 베라와 같은 선택을 한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남성도 포함된 것이지만, 주인공의 비중을 여성으로 잡은 것이 우선일 뿐입니다. 한 여성의 이상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할 남성이 없었다면 가능하진 않았겠지요. 결국 서로의 결이 맞아 이룰 결혼이 격식으로 전락한 결혼이었기에 낳아진 혼란 같기도 합니다.

제정 러시아시대가 지나고 볼셰비키 혁명에 의한 사회주의국가 소련이 성립되고 해체되고, 현재는 다시 러시아로 남아진 일련의 역사적 흐름을 생각해 봅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개인의 선택과 투쟁은 참으로 지난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대 흐름에서 각 개인들의 여러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 소설이 그들의 현실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점을 우리는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주인공 베라의 삶이 지나가는 과정에는 그녀의 선택과 그것이 가능하게 실현될 수 있었던 주변 인물인 두 남자의 존재를 주목해야 하거든요. 그들은 서로 친구이며 그녀의 두 남편이기도 하죠. "당신은 싫어요. 우리 헤어져요."라고 말할 권리를, 아내의 자유를 똑같이 인정한 두 남자의 선택에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누구 하나의 선택만으로 시작되고 자신의 ‘선’을 향한 신념이 실현되는 사회는 어쩌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렇다 해도 그 가능성은 여전히 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믿음’에 의해 남긴 실낱같은 빛의 스며듦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시작되어야만 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는 겁니다. ‘공동체’에 대한 가치는 그 어느 때가 되면 반드시 열려야 할 세계라고 믿고 있습니다. 베라의 선택은 두 번의 결혼으로 가능했어요. 사랑이 자신의 신념에 반할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이 물음에서 나는 그 해답을 이 소설 속의 여주인공 베라와 그의 남편 로뿌호프, 끼르사나노프를 떠올리며 만납니다. 베라와 두 남편은 베라의 갈등에 해답을 건네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소설’에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가능성을 저자는 러시아 사회에 이식시킬 수 있기를 부단하게 노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분명 러시아 사회에 영향을 끼쳤음에는 틀림이 없죠. 볼셰비키혁명에서 그 후 러시아는 레닌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으로 변화했으니 말입니다.

‘베라’는 비천한 집안의 예쁜 처녀이지만 자신의 환경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선택하여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로서의 ‘인간’이기를 원했습니다. 나의 것을 공동체와 나눌 것인가, 나의 것을 지킬 것인가에 ‘사회 지식인’의 선택이 있는 것이고, 미래의 변화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죠. 기득권층의 자발적인 나눔의 시작은 소수의 '위대한 바보'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그들의 변화를 기다리는 일보나 사회 다수의 개인적 삶의 변화를 위한 선택이 훨씬 자연스러운 변화를 가져오는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를 통한 ‘선’을 향한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그 나아가는 시간에는 한 개인들의 사랑과 신념에서 어떤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로써 ‘희망’이었거든요.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와 충돌하는 개인의 모습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르니셰프스끼의 책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그동안 놓쳤던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다시 기억해 내고 꿈꿀 수 있게 해 줍니다.

21세기에 살면서도 여전히 친일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한국사회입니다. 내 나라 지성의 역부족을 탓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것 또한 현대를 살아가야 하는 남아진 자들의 선택으로 변화될 과제이겠지요. 한 개인으로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삶의 시작은 가치 지향의 공감대로 형성된 자발적인 작은 공동체의 움직임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과 지속 가능한 행위들을 이 책을 읽으며 더 가다듬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2014. 10. 20.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끼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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