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만나는 잿빛 기운만큼 무겁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늘 존재의 무거움을 만나게 되곤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에서는 반어의 의미가 느껴지기도 하죠. 그가 오랜 침묵 후에 내세운 작품 속 주인공들이 벌이는 ‘무의미의 축제’는 한 개인들이 마주하는 부조리입니다.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나의 현재를 들킨 느낌이기에 그랬습니다. 어쩌면 길고 지루한 시간을 지나 만난 어느 가을길 여행 끝이라 그럴까요.
아침에 뉴스브리핑을 들으면서 한숨을 몰아쉬는 일도 지치나 봅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알려주는 소리들과 '무의미'한 말들의 파편들에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곤 합니다. 이 시간 가을비 소리에 다시 검은 바다가 떠오르고 흐느끼는 침묵과 통곡의 그 어둠들이 가득 차 오릅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감정을 쿤데라는 무의미를 던져 축제를 열고 나는 그것들을 집어삼키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고 맙니다. 하나 돌이킬 수는 없지만 돌아볼 수는 있는 거지요.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마주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사회에서 살아있는 자들일 수 있는 것인지요. 사람을 버린 일들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지극히 작고 나약한 나를 만나게 하는 이 작가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삶의 의미일 수도 있으려나요. 굳이 에둘러 존재를 확인하려는 안간힘이거나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처절해집니다. 무의미한 말들의 풍경 속에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면 할수록 더 멀리 있는 삶인가 합니다.
가을바람을 안고 길을 걸어갑니다. 그 길에는 코스모스가 춤을 춥니다. 치맛단을 팔랑거리며 골목길을 돌아 내게로 오는 어린 친구가 있네요. 갈대가 은빛 너울로 시선을 붙잡네요. 햇볕은 따갑고 너무 환해서 내 얼굴은 이마에 진한 주름이 잡히고요. 시멘트 바닥을 긁으며 두 개의 작은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함께 하얀 얼굴이 웃음으로 달려듭니다. 바람이 온몸을 흔들자 헤아릴 수 없는 얼굴들이 거리에 넘칩니다. 이 길에는 삶을 빼앗긴 맑은 영혼들이 벌이는 무의미의 축제가 열리고 있네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왜, 쓸쓸해지는지요. 한 권 책으로 위안을 삼고 한 편 영화에서 함께 눈물짓고 한 걸음 나선 이 길 위에선 내 옆엔 이제 없는 사람들이 중얼거립니다. 개인들의 거짓말과 한국 사회가 던져놓은 거짓말로 도금한 시간의 그물들, 그 무의미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상처는 새 살로 가려져도 흔적은 안 보이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계절이 두 번 바뀌었고 짙푸른 바다 위에서 침몰한 이들은 기억의 공간에서도 지워져 가게 되겠지요.
"세월호 얘기 혹시 지겨우십니까?"
9월이 다 끝나는 어느 날 저녁 9시 뉴스의 한 앵커가 던진 물음이었습니다. 자정이 지나 창 밖으로 하늘도 빛을 감춥니다. 또 그렇게 하루가 닫히고 이내 짙푸른 새벽으로 열리는 겁니다. 삶은 의미를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더라고요. 아마도 쿤데라는 무의미한 삶이어도 '살아 있음'을 잘 살아내는 듯한 인물들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라고 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 어느 삶이던 귀하지 않은 것이 있으려나요. 생명이 사물로 전락하는 것만 할까요.
온 마음에 공을 들여 내 삶의 시간을 함께 누린 이들이 어느 날 내 앞에서 절규하며 손을 내밀고 있는 검은 바다는 더 이상 평정을 건네던 그 바다일 수 없었습니다. 나를 벗해주던 그 바다를 삶이 아닌 죽음으로 껴안고 가야 하는 남아있는 시간 동안 '의미'를 찾아가려 합니다. '돌봄 공동체'로 한국사회가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하겠지요. 세월호참사의 진실 찾기는 '무의미'에서 '의미'의 축제로 다시 열어젖힐 그날을 위한 우리들의 관심이겠지요.
2014. 9. 30.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