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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Oct 17. 2023

어수선한 가을

내가 머문 자리에서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끼적일 수 없는 시월이다. 지역에서 가을 행사들이 을 잇고 같은 날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도 힘들다. 그저 내가 자리한 장소에 머물러 구경꾼이 되기로 한다.


주말을 거쳐 집에서 잠자는 일밖에 할 수 없었던 나날을 보내고 조금 가벼워진 몸이 이끄는 일은 역시 글 쓰는 지금이다. 나름대로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자투리 시간에는 책을 들고 집중하기가 좋다. 1시간가량 내게 주어진 시간을 펼치다 책갈피를 끼워둔 한 권의 책에 마음을 모은다. 절반을 읽어내고 들쑤시는 마음이 진정되려면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요즈음 내 삶에 느낌이 어수선하다. 이 가을을 이렇게 누리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지나온 날들에 관한 얽힘과 지금 놓인 내 자리와 오지 않은 내일, 그 어느 날들이 동시에 몰려든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점검하면서 또 그런대로 지나가줄 것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않는다. 스스로 예측하고 기대하는 마음도 지 않는다.


 하필이면 눈에 들어 잡고 있는 책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든 덜 보고 싶은 마음인데 이 쏠림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알맹이가 사라진 껍질에서 이리저리 충돌하는 나를 본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작은 의미들이 소리를 낸다. 이 정도 살아왔으면 무딜 만도 하지 않은가 하면서 쌀쌀맞게 군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눈을 뜨면 냥이가 열어달라고 긁어대는 문소리를 외면하다가 안쓰러워 그를 맞아준다. 얼마나 칼칼하게 소리 내는지 가슴이 시려온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이기에 그저 웃으며 얼굴을 만진다.


 아침에 커피도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다.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할 때인가 보다. 오전은 여우골 책방으로 오랜만에 출근해야겠다. 여우골 숲바람과 새소리로 위안을 얻고 오늘은 덜 어수선하게 지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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