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를 기억하며 문학낭독
충남문화관광재단에서 [예술교육가, 피어나다]로 이어진 프로그램 기획이 이번 가을을 흡족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굳이 경험을 통해 얻을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하던 지난 1년여의 시절을 청산하기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한정된 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대가를 임금으로 환원하지 않은 일이 비현실적이라고들 한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을 위한 자본주의인가는 늘 물음표가 앞서기만 한다. 나름대로 느낌표를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일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웃으면서 해낼 때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을 잘 받아들여야 할 긍정과 낙관이 필요하다. 그 지점에서 선택이 작동하고 일정 부분 잃을 것을 알면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 후 밑바닥까지 후벼 파는 초심을 비껴 나는 상황에서 잘 빠져나올 기회 역시 개인의 선택이다.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그 단순한 결정에서 삶을 구원하는 틈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위화의 작품에서 빌려온 예술교육의 기획 실행이 이토록 설레는 것은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 갈등에서 결단을 내린 스스로를 위한 격려에서 오는 도파민 분출 같다.
청소년들과 나눌 시간을 고대하면서 책방을 준비시킨다. 현수막도 걸고 포스터도 붙여 놓고 맛난 도토리빵도 주문하고. 음료수를 사러 마트도 다녀온다. 이 모든 일이 이토록 고마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니. 겨울을 맞을 안도하는 마음까지 담아내고 있어 매일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