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를 둘러보는 방법 두 가지.
※ '앙코르와트(Angkor Wat)'는 앙코르 유적지 내의 대표적인 사원으로서 흔히 '앙코르 유적지'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 북쪽의 밀림에 위치한 앙코르 유적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위대한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앙코르 유적지는 지금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불가항력의 힘, 자연은 계속해서 앙코르 유적지를 파고들고 있고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끝내는 사라져 버릴 장소'라는 별칭을 가진 앙코르 유적지. 조금이라도 더 온전한 모습을 보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 해 앙코르 유적지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수백만 명. 그중에 우리가 있을 것이다.
0 장소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 유적지의 규모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유적지(사원)의 대부분이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 찬 밀림에 묻혀 있기 때문에 선뜻 그 규모를 예측하기가 어렵지만 앙코르 유적지 내의 여러 사원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앙코르 유적지는 시작부터가 남다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매표소에서부터 다른 곳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앙코르와트 사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자를 건너야 한다(왼쪽). 앙코르 유적지 티켓(오른쪽). 해당 날짜에 구멍을 내서 입장한 날을 확인한다.
※ 앙코르와트를 오가는 많은 관광객들. 앙코르와트 사원 내부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바깥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오른쪽)
※ 앙코르와트와 함께 대표적인 볼거리로 손꼽히는 '앙코르 톰(왼쪽)'과 '프레아 칸'의 이끼낀 부조들.
앙코르 와트(Angkor Wat)와 그 너머의 앙코르 톰(Angkor Thom) 등을 비롯한 그 주변의 사원, 유적지들을 둘러보기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때부터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티켓은 1일권과 3일권, 그리고 7일권으로 나뉘는데, 본인 확인을 위한 즉석 사진이 티켓에 인쇄되며 3일권은 7일의 기간 동안 3일간, 7일권은 한 달의 기간 중 7일간 앙코르 유적지 입장이 가능하다.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봐야 함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방법이라 함은 툭툭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물론 단체 관광객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가장 유명한 사원(앙코르와트/톰)을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고, 밀림을 걸으며 가까운 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툭툭이라 할 수 있으며 툭툭에 비해 덜 일반적인 방법이 자전거를 타고 유적지를 둘러보는 방법이다.
※ 날씨가 무덥거나 비가와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툭툭과 그렇지 못한 자전거.
툭툭과 자전거는 서로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가진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툭툭은 빠르고 편하다. 혼자 혹은 서너 명이서 함께 툭툭을 타고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릴 때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소나기가 내릴 때면 지붕과 차단막이 빗방울을 막아준다. 빠르고 편리하다는 점,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은 툭툭을 앙코르 유적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 되도록 했다. 하지만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놓치게 되는 것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전거는 툭툭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인다. 동네 나들이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타고 적게는 수 km, 보통 수 십 km 거리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정글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나기가 쏟아진다. 소나기가 내리거나 힘들고 지칠 때, 자전거는 멈춰 선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툭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볼 수 있게 한다. 툭툭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지나쳤던 풍경들은 자전거를 타면 보이기 시작한다. 툭툭에서는 밀림 속의 작은 변화들을 볼 수 없지만 자전거는 작은 변화들이 보이게끔 해 준다.
툭툭이 지도 위에 하나의 점과 또 다른 점을 찍는 것이라면, 자전거는 지도 위에 점과 점 사이의 선을 긋는 것이다.
툭툭은 밀림 속에 흩어져 있는 각각의 유적지에 관광객들을 빠르게 실어다 준다. 여기에서 저기, 저기에서 저 멀리로 빠르게 이동한다. 툭툭에는 여기에서 저기 사이가 채워져 있지 않다. 목적지, 그리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여기에서 저기의 사이가 채워진다. 점과 점 사이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어떤 내용들로 채워지면서 선이 된다.
※ 비 내리는 밀림에서는 모든 것이 멈춘다지만, 관광객을 실은 승합차와 툭툭만은 끊임 없이 움직인다.
앙코르와트를 시작으로 하여 앙코르 유적지의 여러 장소를 돌아보는 일은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툭툭을 타고 밀림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림의 바깥쪽까지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앙코르 유적의 중요한 부분들을 둘러보는 것으로도 앙코르 유적지의 진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앙코르 유적지의 진면목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현재'의 앙코르 유적지는 밀림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툭툭을 타고 지도 위에 점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자전거를 타고 다시 밀림 속으로 들어가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소나기가 쏟아지는 밀림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소나기를 만나면 나무 아래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거나, 빠른 속도 빗속을 뚫고 지나가는 툭툭과 승합차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가끔은 불개미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새들이 나를 둘러쌌고, 원숭이들은 호기심 가득항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타고 정글을 돌아다니는 일이 싫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자전거에 올라 사원과 사원 사이를 이동하며 밀림에 갇혀 버린 크메르 제국의 흔적을 둘러보는 일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밀림에 묻혀 있던 앙코르 유적지가 발견되었을 때부터 캄보디아 내전이 끝날 때까지 약 150년 동안, 유적지는 조금씩 파괴되어 왔다. 지금은 보존과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파괴'되고 있다. 수 백 년이라는 시간, 오랜 세월 동안 밀림 속에 웅크리고 있던 앙코르 유적지 곳곳으로 나무뿌리들이 파고들었다. 나무들은 조금씩 조금씩 좀 더 깊은 곳으로 그들의 뿌리를 밀어 넣고 있다. 나무뿌리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아주 천천히 무너뜨리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앙코르 유적지는 밀림과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쩌면, 툭툭이나 관광버스보다는 자전거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삶은 대체로 점으로 관철되어 있다. 출발점과 도착점, 목적지가 중요할 뿐 그 과정은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점과 점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점들을 찍어 선으로 만들어 본다면, 혹여나 선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의 풍경이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선은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