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준 Dec 18. 2019

비행기 조종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파일럿이 궁금한 당신에게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꼭 듣는 말


중국에서 비행하던 당시 헐렁해진 선글라스 프레임을 조이기 위해 안경 가게를 찾을 때 일이다.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안경 가게 주인 부부가 외국인 아가씨인 나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걸어주었다.


“중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중국에서 살기 힘들지 않아요?”

“학생이에요? 일해요? 무슨 일 해요?”

상하이에서 항공사에 다니고 있다고 하니 그 부부는 “아, 스튜어디스?” 한다. 나는 이미 이런 반응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항공사에 근무한다고 하면 대개 99퍼센트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객실 승무원이나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파일럿이라고 하면 금세 나를 대하는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남자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여자 파일럿은 처음 봐요.”


예전에는 그 뒤에 설명해야 하는 말이 길어져서 굳이 파일럿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 상대방이 어떤 상상을 하든 그저 "네~"라고 했을 뿐.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편견. 누가 그렇게 정의 내린 것도 아닌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혹은 관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러한 편견을 갖고 있다.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이 있고,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그런 편견에 의하면 파일럿은 남자들이 하는 대표적인 직업 중에 하나이다. 물론 파일럿이라는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이다. 세계에서 여성 파일럿이 가장 많은 미국에서도 여성 파일럿은 전체 파일럿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5년 전만 해도 항공사마다 두 세 명 있는 정도였으니 대한민국을 통째로 다 뒤져봐도 여성 파일럿은 열 명이 채 안 되었다.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여성 파일럿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다.

비행기가 크면 조종사의 힘도 커야 한다?


비행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비행을 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계속 수동으로 조종하는지 또는 자동으로 조종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일럿이 계속해서 밖을 보면서 수동으로 비행기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름 속에 있으면 어떻게 조종하느냐’, ‘12시간씩 비행하는 경우 밥은 어떻게 먹느냐’ 하고 질문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일단 이륙을 하고 나면 밖을 보고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조종실 내의 계기판에 의존해서 비행을 하기 때문에 밖이 보이건 보이지 않건 상관이 없다. 그리고 제트기에는 오토 파일럿이라는 비행 자동화 장치가 있어서 이륙 직후에는 이를 가동시키면 된다. 오토파일럿을 가동시킬 수 있는 최저 고도는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내가 중국에서 조종했던 에어버스320의 경우 제조사인 에어버스의 매뉴얼에 따르면 이륙 후 100피트약 33미터, 2019년 현재 한국에서 조종하고 있는 보잉737의 경우 400피트(약 120미터)의 고도에 이르면 오토파일럿을 가동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100피트, 400피트라는 고도는 비행기가 이륙한 후 3초 또는 10초의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고도이다. 그럼 오토파일럿을 가동시킨 후에 파일럿은 그냥 노는 걸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수동으로 조종간을 움직여서 비행기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 아닐 뿐, 컴퓨터에 알파벳이나 숫자를 입력하고 버튼을 돌려서 속도, 방향, 고도 같은 것을 변경시키고 조종간을 움직이도록 명령한다. 동시에 관제사와 끊임없이 교신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달해서 착륙하기 약 5분 전에, 즉 활주로가 파일럿의 눈에 들어온 이후에는 오토파일럿에서 수동 조종으로 모드를 변경해 조종간을 잡게 된다. 이쯤 되면 비행기 조종은 힘보다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하려면 비행기 안에는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이 필요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동안 그 둘은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왜 대부분 조종사는 남자가 하고 객실 승무원은 여자가 하는 걸까? 같은 노선을 비행하는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은 비슷한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비행기 안에서 일한다. 조종사는 조종석에 앉아 버튼을 돌리고 누르는 등 자동화된 기계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객실 승무원은 꼿꼿한 자세로 승객들에게 인사하고, 오버헤드빈overhead bin, 승객 좌석 위쪽에 부착된 선반에 짐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돕고, 식음료가 가득 담긴 무거운 카트를 밀고 끌며 서빙을 한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여정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육체적인 노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흔히들 남자와 여자는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조종사는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은 과연 맞는 것일까? 조종사는 객실 승무원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든 직업일까? 물론 비행 중 기계 결함이 발생하거나 악천후에 비행을 해야 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운행해야 하는 상태에서는 강인함과 판단력이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인함과 판단력은 성별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 손목을 보며 물으셨다.

“이렇게 가는 손목으로 어떻게 그 큰 여객기를 조종하는 거냐?”

오늘날의 여객기는 힘으로 조종하는 비행기가 아니다. 조종간을 잡고 버튼을 돌리는 데는 그렇게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심지어 조종간은 손가락 두 개 가지고도 조종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다. 버튼을 돌리고 누르고 잡아당기고 컴퓨터에 숫자나 알파벳을 입력하고 파워 핸들을 밀고 당기는 데 무슨 힘이 들겠는가? 지식과 경험, 냉철한 판단력, 신중한 선택, 반복된 연습과 훈련으로 숙련된 기술… 이런 것들로 조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조종하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부족한 것은 분명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은 그저 우리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Ladies and Gentlemen, This is your Captain speaking!”


여객기 조종실에 들어가면 기장의 자리는 왼쪽이고 부기장의 자리는 오른쪽이다. 승객이 타고 내리는 문은 왼쪽에 있다. 그래서 승객들은 가끔 탑승하다가 기장 조종석 옆 창문으로 나를 보곤 한다. 나를 본 승객들은 두 번 놀란다. 우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놀라고, 또 생각보다 어려 보여서 놀란다. 그들 중 일부는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이 옆 사람과 수군대기도 하고, 일행의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모든 것들이 어색하고 ‘혹시 내가 여자라서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탑승하는 승객들이 나를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로 창문을 닫아놓곤 했다. 조종사가 여자라는 것을 들킬까 봐 기내 방송도 잘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라도 한 사람처럼, 죄라도 지은 것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숨어서 비행기를 운행했다.



모두가 너무 늦었다고 말할 때 나는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에 파일럿을 꿈꾸고, 마흔다섯에 여객기 기장이 되다


*이 글은 <파일럿이 궁금한 당신에게>에서 발췌했습니다.

<파일럿이 궁금한 당신에게>

*도서 보러 가기

http://bit.ly/2sC1DM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