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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준 Feb 06. 2020

SNS '좋아요' 많이 받던 여자가
눈물 쏟은 사연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가면을 썼다 벘었다 하는 요즘 멀티플레이어들


딸아, 우리가 만났던 몇 달 전 일을 기억하니?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너와 시내 맛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한가롭게 휴일을 보냈지. 그때 들른 맛집에서 무엇을 시킬까 고민하던 우리는 각자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나는 늘 그렇듯 포털 사이트에 맛집 이름을 넣어서 검색했다. 그런데 너는 당연한 듯 인스타그램을 열더구나. 내가 인스타그램에 그런 정보도 나오냐고 묻자 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인스타 태그로 검색하면 안 나오는 게 없어. 인스타로 쇼핑도 하는데 뭘.”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 솔직히 엄마는 이제 따라가기가 버겁다. 몇 년 전만 해도 소셜 미디어라고 하면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가 등장해 순식간에 사용자들을 흡수하더구나. 더군다나 요즘은 하나의 계정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한 사용자가 여러 개의 계정을 사용한다고 한다지? 정치적인 메시지는 트위터에, 맛집과 여행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식으로 말이야.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욕구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두고 분석심리학자 융의 페르소나 개념을 빌려 ‘멀티 페르소나’라고도 하더구나. 사람들이 자기 상황에 맞게 여러 개의 가면을 그때그때 바꿔 쓴다는 거야. 옛날 같으면 앞 다르고 뒤 다른 사람은 두고두고 남들의 수근거림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앞 다르고 뒤 다른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하구나. 정말 스마트폰 기술과 문화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신인류’의 등장이라 할 만하다.


SNS의 두 얼굴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는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 우리나라 페이스북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페이스북 친구는 평균 331명, 오프라인 친구는 24명이었다. 친구가 300명이 넘다 보니 늘 접속과 동시에 쉴 새 없이 메시지, 정보와 사진이 올라온다. 관계가 넘쳐나는 시대인 셈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관계 맺기도 쉽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만나야 하는 오프라인과 달리 이모티콘으로 간단히 감정을 전달하고,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끊기도 하고, 원치 않을 땐 나를 감출 수도 있다. 자기 노출을 강요받지 않기에 관계 맺기의 부담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가 가능해진 셈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감추고 괜찮게 생각하는 것만 추려내 ‘되고 싶은 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일도 흔하다.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원폴에 따르면 여성의 25퍼센트가 한 달에 1~3회 SNS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답했다. 타인에게 ‘난 잘살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 취향, 지식, 인맥 등을 과장한다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멋진 여행 사진이나 좋은 레스토랑에 갔던 경험담을 위주로 올린다. 당연히 초라한 일상생활은 ‘공개 금지’다.


그래서인지 요즘 소셜 네트워크에 피로감을 느끼며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가볍고 피상적인 관계에 피로를 느끼다가도 자기가 쓴 글에 ‘좋아요’가 별로 없으면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더구나. 또 다른 사람의 SNS에 올라오는 멋진 모습에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자기도 그런 모습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거야.


백조가 호수의 물결을 잔잔히 가르며 우아하게 유영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 하지만 백조는 물밑으로는 엄청난 물갈퀴질을 하고 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SNS에서는 항상 멋지고 쿨한 척하지만 열심히 노동하는 물밑의 삶은 감춘다. 서로를 향해 열심히 ‘좋아요’라고 외치지만 그 반대의 모습은 보여 줄 수 없다는 사실. 사람들의 외로움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스물여섯 살 미선 씨에게 온라인 세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번째 집이었다. 그녀에게 팔로워들의 댓글은 이불과 같았다. “SNS 댓글은 오로지 저만을 위한 거잖아요. 댓글이 많이 달리면 그날은 잠이 잘 와요. 새로 산 이불을 덮는 기분이랄까. 왜 평소엔 잠이 안 와도 새 이불을 덮으면 잠이 잘 오잖아요.”


어릴 적 엄마 품에서 먹고 자던 아이는 자기 방을 갖게 되면서 엄마의 품을 떠나 독립하는 시기를 맞는다. 이불과 베개의 크기가 커지면서 몸은 성인이 되지만, 마음은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싶은 내면의 아이와 앞으론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어른의 역할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을 빚게 된다. 등 떠밀리듯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배려받고 싶은 아이가 마음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선 씨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심리적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봄이 오면 여름이 오듯, 대학생이 되면 저절로 연애도 하고 친구들도 생길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학 생활은 소속감을 주는 반과 짝꿍은커녕 졸지에 지정석 없는 캠퍼스로 내몰린 외로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친구조차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고독한 대학 생활을 보내는 동안 미선 씨는 SNS 댓글에 웃고 우는 삶을 살았다. 교회와 동아리 선후배들에게 팔로워 신청을 하게 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구나’ 하는 확인을 받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았다.


그런데 왜 그녀가 진료실에서 그렇게 울었을까? 그녀에게 ‘좋아요’와 댓글은 일시적인 안녕감은 주었을지 몰라도 근원적인 결핍감은 채워 주지 못했다. 온라인상의 관계는 한편으로 픽션이다. SNS에 올린 멋진 사진들은 그녀가 내보이고 싶은 자아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 댓글이 달릴수록 ‘관심 받고 있다’는 스포트라이트 효과를 느끼지만 오프라인으로 만날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 온라인에서 너무 멋진 사람일수록 직접 만나면 실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기에는 어색하고, 연결은 해 놓기에 적당한 사람일수록 우리는 온라인에서 친절해진다. 미선 씨는 댓글 수가 많아질수록 무의식적으로 이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르시시즘과 자아도취적 성격의 상관관계


과학기술과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외로워지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자아도취적인 사람이 소셜 미디어와 만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녀는 나르시시즘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무 깨지기 쉬워 지속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인격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자아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은 타인의 복잡한 요구사항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만을 취하며 관계를 맺으려고 든다. A라는 친구가 반응하지 않을 땐 바로 B라는 친구에게 접속하면 되는 소셜 미디어와 그들이 어울리는 이유다. 내적 자아가 확고하지 않을수록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데 온라인 세상에서는 그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미선 씨 역시 상처받기 쉬운 내적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만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라는 뜻인데, 그녀는 그 상처를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대면하는 관계를 맺기보다 온라인에서 나누는 따뜻한 댓글이 더 좋았다.


딸아, 너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라. 그들과 달콤하고 좋은 추억만 나눠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프고 힘든 순간을 서로 잘 이겨 낸 뒤 더 끈끈하고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을 거야. 그런데 온라인 공간은 관계에 필요한 내성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을 한다. 당장 좋은 댓글이 달리고 팔로워가 늘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지만, 거꾸로 조금만 부정적인 의견이 올라와도 크게 상처를 입는다. 그러다 보면 좋지만 공허한 말이 쌓여 채워지지 않는 고독감을 남기고야 만다.


그러니 SNS로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 마라. 자연을 떠나서 인간이 살 수 없듯, 관계도 서로의 촉감을 떠나서는 깊어질 수 없다. 정말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주고, 때론 단점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온라인에서 감추고 싶은 모습이 있듯이 다른 사람도 같은 이유로 외로워하고 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꺼내 피드를 훑기 전에 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보면 어떨까. “밥은?”, “건강은?”, “무슨 일은 없고?” 어쩌면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항상 온라인 세상에서만 주고받느라 육성으로 들어 본 적 없는 서로의 안부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너를 함부로 대하도록 허락하지 마라.
진정한 이기주의자란 자신의 길을 갈 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에 당당히 맞서라. 



*이 글은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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