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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준 Feb 19. 2020

칸트 책은 대체 왜 그렇게 어려울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편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모든 것을 '비판'한다


칸트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그의 대표작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기인한다. 이 책들은 각각 인식론, 윤리학, 미학을 다룬다. 쉽게 말하면 비판 시리즈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각각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중에서 칸트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순수이성비판》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이란, 무엇인가를 비난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제시한다는 뜻이다. 즉, 순수이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하지 못하는지 그 경계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비판 활동 역시 이성적 활동이다. 그래서 순수이성비판은 이성으로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세운 칸트 동상


'순수이성'이란 뭐냐


그렇다면 순수이성이란 무엇인가? 순수이성은 인간의 선천적 인식 능력 전체를 말한다. 갑자기 신경 쇠약증이 올 것 같지만 벌써 그러면 안 된다. 단어가 낯설어서 그렇지 천천히 알아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개념이다. ‘선천적 인식능력’이란 경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의 능력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더 쉽게 말하면 정신의 디폴트값, 즉 컴퓨터를 포맷하고 방금 OS만 깐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인간의 순수이성은 다음의 세 가지 능력을 갖고 있다. 감성, 지성,( 좁은 의미의) 이성. 각각에 대해 알아보자.


감성은 오감을 통해서 감각자료를 받아들이는 능력이고, 지성은 개념화해서 판단하는 능력이며, (좁은 의미의) 이성은 추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리하면, 순수이성 비판이란 인간의 인식능력인 감성, 지성, 이성을 우리의 유일한 도구인 이성을 통해 점검하고 그 한계를 명료히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앞에 있는 사과가 진짜 사과냐


그렇다면 칸트는 도대체 왜 이런 작업을 하는 걸까? 그것은 지금까지의 서구의 철학, 사상, 종교 등의 학문적 탐구 활동이 확실한 진리를 담보할 수 있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모든 학문은 탐구 대상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자연을, 철학은 개념을, 수학은 수학적 대상을, 종교는 형이상학적 대상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러한 탐구 대상을 탐구하기 위해서 그것 자체만 들여다보려고 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대상을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과를 관찰하고 잘라보고 냄새 맡아보는 등의 활동만 했다.


하지만 칸트는 그러한 탐구를 진행하기 전에, 우선 그 탐구 대상이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났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것은 눈앞의 사과라는 대상이 어떻게 나에게 드러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칸트는 상식적으로 접근한다. 자연을 탐구하기 전에 자연이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었는지를, 개념을 탐구하기 전에 개념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확인해야만 과학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비로소 엄밀한 탐구를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철학적인 언어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인식 대상을 문제 삼기 전에, 인식 주체의 인식능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내 안경의 상태는 어떠한가


칸트의 작업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느 화가가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눈에 처음부터 색안경이 끼워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이 안경이 빠지지 않는 안경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경의 상태를 점검해야만 한다. 도수와 색깔과 그 특징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제대로 그려졌는지를 비로소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의 빛나는 업적은 인류에게 이미 색안경과 같은 인식능력이 이성 안에 내재해 있음을 밝혀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는 데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을 지구가 아니라 태양으로 뒤바꿈으로써 천문학의 대전환을 가져왔던 것처럼, 칸트는 물질적 대상의 위치를 외부의 세계에서 내부의 세계로 뒤바꿈으로써 철학사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이 글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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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t.ly/2S936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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