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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우 Apr 05. 2016

성실함의 역설, 그는 단지 성실했을 뿐이다

[아돌프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시인 김남주>



성실함의 역설 : 마이너스 기여도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어떤 관료는 과연 인재인가? 이런 유형의 인물이 승진해서 높은 자리에 오를만한 사람인가? 깊게 한 번 고민해볼 문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반드시 탈락시켜야 할 1순위에 속한다. 물론 이 역시 개인차가 있으리라. 나는 성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성실함은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특히 이런 사람은 리더의 자리에 앉히면 안 된다. 

예컨대, 능력은 별 볼 일 없으나 성실한 팀장이 있다. 팀원들은 그 팀장의 무능력을 알고 신뢰하지 않는다. 팀장은 성실해서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항상 저녁 늦게 퇴근한다. 선천적으로 부지런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다지 생산적이지는 않다. 다만 책상에 오래 앉아있고, 회사에 오래 있는다. 팀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긴 하지만 팀원들은 못마땅해한다. 팀장 이상급들은 직원 개개인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일찍 오고 늦게 퇴근하고, 오래 책상에 앉아 있으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성실함의 역설'이 발생한다. 상사의 맹목적인 성실함이 팀원들에게는 비효율과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팀원들 입장에서 보자.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을 시키는지. 더군다나 매일 일찍 오고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눈치도 보인다. 마치 내가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단 직원이 저렇다면 혼자만 힘들고 만다. 기여도로 따지면 '기여도 제로'다. 하지만 리더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다. 팀원들도 힘이 든다. 오히려 정작 해야 되는 것을 못한다. 기여도가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가 된다. 없어야 좋은 존재다. 뽑으면 안 되는 케이스다. 뽑았어도 승진을 시키면 안 되는 케이스다.

흔히 자소서나 면접에서 성실함을 어필하는 지원자들이 있다. 꽤 많다. 그때 드는 생각은 '얼마나 내세울 것이 없으면 성실함을 어필할까'란 생각이 든다. 수업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고, 지각을 한 적이 없단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결석, 지각이 없으면 일을 잘하는 건가? 나는 무지 게으르다. 그런데 회사 다니는 5년 반 동안 지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한두 번 정도 있을까. 주변에도 지각, 결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전날 자정이 넘어서까지 회식을 한다 한들 다음날 모두 평소와 같이 출근한다. 설사 출근하고 나서 없어지더라도. 그건 경쟁력, 어필 포인트가 아니다. 그냥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난 그런 사람을 경계한다. 기업에 이미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무능력하지만 굉장히 성실하다. 지각은커녕 휴가도 잘 안 간다. 근무시간에도 항상 책상에 앉아있는다. 그런데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뭔가 하는 것 같은데 결과물은 없다. 하는 시늉만 하다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 보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본인의 살 길을 찾는다. 귀신같이 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그런 무능력한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상사 비위를 잘 맞추거나 아니면 성실하다. 능력이 없으면 성실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 본인도 아마 알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란 사실을.


'기계화, 자동화'로 성실함의 시대는 끝났다


그렇게 때문에 자소서 혹은 면접에서 성실함을 어필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면접관이 제법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대상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성실함이 미덕인 시대는 이미 많이 지났다. 제조업 중심의 기업일 경우 성실함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계로 많이 대처되었으며 최근에는 컴퓨터로 처리되는 것이 많아졌다. 이른바 기계화, 자동화로 인간의 성실함이 대처되었다. 기계보다 성실한 인간은 없다. 컴퓨터보다 정확한 인간도 없다. 따라서 인간의 성실함은 종말을 고했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곳은 대부분 감시, 모니터링을 필요로 한 곳이다. 이런 곳은 성실함이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이 역시 원격 감시, 자동화로 상당 부분이 무인화되고 있는 추세다. 예전에는 열심히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됐다. 그게 일이었다. 열심히 모니터 보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이게 하는 일의 전부다. 지금도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있다. 그래서 아직 근면 성실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제 그런 좋은 시대는 끝났다. 원격 감시가 가능한데 굳이 모니터 앞에 앉아서 24시간 감시할 필요가 없다. 이건 낭비다. 앞으로 이런 곳은 무인화로 계속 없어질 것이다. 이런 곳에서 근무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학생은 과정을 중시하고
사회인은 결과를 중시한다


성실함은 사회인보다는 학생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학생과 사회인의 차이가 무엇인가요?'라는 면접 질문이 있다. 나는 이 질문에 '학생은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사회인은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사회인은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예컨대, 두 사람에게 똑같은 업무를 주었다. A는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할 때까지 아주 성실하게 업무에 몰두한다. B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칼퇴근한다. 결과를 가져왔을 때, A는 성과가 좋지 못했고, B는 성과가 좋았다. 그랬을 때 어떤 평가를 하겠는가?

A에게 "너는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아" B에게 "너는 성과는 좋지만 열심히 좀 해야지"라고 할 상사, 선배는 아무도 없다. A에게 "너는 만날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뭐 했냐", B에게 "너는 만날 노는 것 같더니 열심히 했네"라고 할 것이다. 과정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설령 B가 누구에게 부탁을 해서 해왔을지 언정, 그것 자체도 능력이다.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회란 그런 곳이다. 반면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므로 과정이 중요하다. 성과가 좋지 못할지라도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학생과 사회인은 이런 차이가 있다.

과정을 중시하는 학생은 그래서 성실함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인은 과정에서 성실함보다 실질적인 성과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의 성실함보다 결과의 문제해결력이 중요하다. 과정이 어찌 됐든 문제를 해결하면 잘 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자소서 혹은 면접에서 성실함을 어필하는 지원자를 보면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실함은 학생 때나 하는 것이고 사회인이 되려는 사람은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정의 성실함보다는 결과의 문제 해결 쪽의 답변이 좋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학생과 사회인의 차이다. 학생 티를 벗자 이제.


아돌프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그는 단지 성실했을 뿐이다


미래의 인재상은 '시키는 일을 잘하는 모범생형 인재'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만드는 창조적 인재'이다. 성실함을 무기로 하는 사람이 아닌 사고력을 무기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이 있다.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로서, 나치독일하에서 유대인 축출 전문가로 통하며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 위치에 있었던 자인데,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약 15년간을 도망치다 잡혀 전범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때 재판장에서 본 아돌프 아이히만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이다. 그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공무원에 지나지 않았다.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본인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단지 성실하게.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성실했을 뿐이다. 오히려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는 것이 악이라고 답변했다. 이와 같이 통찰과 사유가 없는 성실은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단지 성실했던 관료 한 명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아주 효율적으로 학살했다.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유하지 않은 채, 아주 성실하게 맡은 일을 수행한다. 그의 성실함이 유대인 학살의 규모를 더욱 키웠다. 조금만 덜 성실했더라면. 결국 그는 사형 당했다. 성실했다는 죄로. 성실함의 역설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통찰과 사유 없는 성실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는 아주 극단적인 예이다. 기업에서도 이러한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통찰과 사유가 있다면 하지 않을 일들을 단지 누구의 지시로 혹은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성실하게 해서 기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접관들도 십수 년의 회사생활로 이런 인물들을 많이 봐왔다. 혹시 현재 본인의 상사가  그런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면접에서는 성실함보다는 사고력을 어필하는 답변이 좋다.


자아성찰이 안 된 사람은
리스크가 크다


혹자는 자아성찰이 안 된 사람이 다루기 쉽기 때문에 기업에서 더 선호할 것이란 이야기를 한다. 물론 관리하기는 이런 사람이 더 쉽다. 하지만 위험하다. 자아성찰이 안 된 사람은 자기 주관, 즉 소신이 없고 소신이 없으면 시키는 대로 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사안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가 안 된다. 상사도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고, 모든 것들을 예상해서 계획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이 미칠 파장을 예상해서 다시 한 번 판단해보는 안전장치를 거쳐야 한다. 그 안전장치가 없어지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자아성찰이 안 된 사람은 뽑지 않는 편이 좋다.

1) 사고력이 좋고, 성실한 사람 -> 1순위
2) 사고력이 좋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 -> 2순위
3) 사고력이 나쁘고, 성실한 사람 -> 4순위
4) 사고력이 나쁘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 -> 3순위

위와 같을 때 제일 먼저 1번을 뽑는 것이 아닌 3번을 걸러낸다. 위험인물부터 골라낸 후 1번, 2번 순으로 뽑힌다. 4번까지 차례가 오지 않겠으나 만약 3번과 4번이 남았다. 이 둘 중 한 명을 무조건 뽑아야 한다면 나라면 4번을 뽑겠다. 4번은 기여도 제로이지만 3번은 기여도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승진 시험일 경우 더욱더 3번은 필히 제외해야 한다. 오히려 능력 있는 직원이 3번 같은 상사로 인해 회사를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 되는 조직과 안 되는 조직은 3번 같은 사람을 승진시키느냐 배제시키느냐로 결정될 수 있다. 본인이 속한 조직을 잘 관찰해 보길 바란다.


문제는 성실함이다. 정답은 사고력이다


지금까지 성실함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요컨대, 학생은 과정을 중시하고, 사회인은 결과를 중시한다. 과정에는 성실함이 필요하고, 결과에는 문제해결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인이 되려는 사람은 과정의 성실함보다 결과의 문제해결력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래의 인재상은 시키는 일을 잘하는 인재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창조하는 인재이다. 따라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함보다는 스스로 목표를 창조해 내는 사고력이 중요하다. 사고력, 즉 통찰과 사유가 없는 성실함은 독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리더로 올라갈수록 이런 사람은 배제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해서 기업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기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실함이 필요한 시대는 끝났다. 지금 시대에 성실함은 필요 없다. 성실함은 학생 때 나 필요한 것이다. 학생 티를 벗고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자. 성실함보다 사고력이 필요하다. -헨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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