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단계 업무 프로세스]
공기업 직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너네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일 것이다. 한전 직원은 전기를 공급하고, 한수원 직원은 전기를 생산하고, 공항공사 직원은 항공기 이착륙을 돕고, 공항을 운영한다. 아니 이런 표면적인 것은 알겠는데 실질적으로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십중 팔구는 대답을 못한다. 글쎄 하도 다양한 지사, 부서, 직무가 있어서 무엇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현직자들도 무슨 일을 하는지를 설명 못하는데 취준생들한테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다.
업무는 서무가 있고, 실무가 있다. 서무는 루틴한 업무로써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다. 일일, 주간, 월간, 분기, 반기, 연간 업무와 같이 해마다 항상 똑같이 반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고,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부분 신입사원을 비롯한 1~3년 차가 담당을 한다. 반면 실무는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업무다. 그래서 주로 사업이라고 표현하며 "올해 사업이 몇 개야?" 이런 식으로 많이 이야기한다. 사업을 많이 할수록 회사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고 중요한 업무를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실무를 다른 말로 하면 직무이다. 실무는 물품, 용역, 공사,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의 사업을 진행할 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용역을 수행하고, 공사를 시행하는 일'이 실무이다. 그 분야가 통신이냐, 전기냐, 기계냐로 통신팀 업무, 전기팀 업무, 기계팀 업무로 구분된다. 예컨대 조명을 교체해야 하면 전기팀 업무가 되는 것이고, 에어컨을 교체해야 하면 기계팀 업무, 스위치나 라우터를 교체해야 하면 통신팀의 업무가 되는 것이다. 또한 홍보를 해야 하면 홍보팀 업무, 신입사원 채용을 해야 하면 인사팀 업무, 건물 청소를 해야 하면 총무팀 업무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사업은 사업계획, (물품,용역,공사)설계, 입찰계약, (물품,용역,공사)감독, (납품,준공)검사, 대금지급, 인수인계의 7단계를 거쳐서 완료가 된다. 따라서 올해 내 사업이 5개라면 이 과정을 5번 수행하면 올해 사업은 끝이 난다. 물론 사업마다 기간과 예산은 다르므로 1개월 걸리는 단기 사업이 있는 반면 1년이 넘는 장기 사업도 있다. 또한, 100만원 미만의 사업이 있는 반면 1조가 넘는 사업도 있다. 이 모든 사업은 7단계를 거쳐서 실행이 되고 완수가 되기 때문에 7단계별 업무를 파악할 수 있으면 공기업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1단계 : 사업계획
하반기 9월쯤 내년도 사업계획을 제출하라는 문서가 시달되면 이때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내년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한데, 그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계획을 세워서 예산을 신청하게 된다. 만약, 내가 전기팀이라면 평소 전기설비를 유지보수하면서 교체가 필요했던 설비가 있는지, 증설이 필요한 설비가 있는지, 보강공사가 필요한 설비가 있는지를 탐색한다. 그러다 발전기의 증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발전기 증설공사'라는 공사명을 붙여서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사업계획이라 하고, 이렇게 수립된 사업계획은 본사에서 취합하여 기재부에 올라간다. 기재부에서는 국회에 예산을 올리고,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거쳐 내년도 예산이 확정된다. 그렇게 예산이 확정되면 그 사업이 내년도 나의 사업이 되는 것이다. 사업계획 단계에서 사무직은 주로 용역, 기술직은 주로 공사에 대한 기획을 하며 물품은 양쪽 모두 한다. 일반적으로 기획안 작성을 사무직 업무로만 알고 있는데, 기술직도 기획안 작성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양측 모두 기획력이 요구된다.
2단계 : 물품, 용역, 공사 설계
전년도에 확정된 사업을 가지고 올해 사업을 위한 설계를 한다. 설계를 한다는 것은 사업에 필요한 자재비와 인건비를 산정하는 과정으로 이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어떤 자재가 필요하고, 어떤 공정이 필요한지를 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분석력이 요구된다. 각 사업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하여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모든 사업단계는 이 설계서를 바탕으로 진행되므로 설계가 잘 되어야 다음 단계에서 용역과 공사가 잘 수행되며 물품이 잘 들어올 수 있다. 전년도 사업계획에 대한 실행계획으로 설계서에는 사업에 필요한 모든 사항이 들어가야 하므로 7단계 중 핵심이라고 꼽을 수 있다.
3단계 : 입찰, 계약
설계서가 완성되면 자재계약팀으로 넘어가고, 계약담당자는 이 사업을 입찰에 부친다. 주로 전자공개입찰로 진행이 되고, 이 사업을 할 능력이 되는 모든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전자입찰 사이트를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 기업이 올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기업의 전자입찰 사이트를 검색해보는 것이다. 한 번쯤은 원하는 기업의 전자입찰 사이트에 들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검색해볼 것을 권한다.
낙찰된 업체가 선정이 되면, 계약담당자가 용역 혹은 공사 계약을 하고, 이를 다시 사업 담당부서에 넘겨준다. 지금부터 사업 담당자는 낙찰된 업체와 2단계에서 만든 설계서를 바탕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3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계약담당자와의 대인관계능력이다. 계약은 계약담당자가 하지만 사전에 미리 계약방법과 계약시기 등 조율을 하고 계약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담당자와의 원활한 사전 협의가 사업이 일정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4단계 : 물품, 용역, 공사 감독
업체가 선정되면 물품을 납품하고, 용역을 수행하며, 공사를 시행한다. 이때 사업 담당자는 내가 작성했던 설계서대로 물품이 들어왔는지, 용역이 수행되는지, 공사가 시행되는지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능력은 계획성과 리더십이다. 감독자로서 업체를 이끌고 사업을 일정대로 진행하기 위해 일정, 예산, 인력, 세 가지를 관리해야 하므로 그중 일정과 예산을 관리하기 위해 계획성이 필요하며, 인력 관리에 리더십이 필요하다.
애초 설계서에 계획했던 일정대로 물품이 들어왔는지, 용역과 공사가 진행되는지를 관리해야 하고, 필요한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활용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과정에서 현장대리인과 상의하여 부족한 부분을 조율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흔히 2단계인 설계가 끝나면 사업이 반 이상인 끝났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업의 품질은 설계 단계보다는 감독 단계에서 결정이 되므로 꼼꼼한 관리 감독이 요구된다. 관리 감독의 실수는 곧 사고로 연결되고, 이는 품질의 하락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5단계 납품 검수, 준공 검사
물품 납품, 용역 수행, 공사 시행이 끝나면 설계서대로 성능을 발휘하는지, 품질을 갖추고 있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단계가 검수, 검사 단계이다. 따라서 세밀함, 꼼꼼함이 요구되고, 책임감이 필요하다. 모든 단계에서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특히, 검수자, 검사자는 이 사업에 미비점은 없는지 면밀하게 검토하여 추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설계서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추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며, 사업의 품질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6단계 : 대금지급
검수자, 검사자가 확인을 하면 최종적으로 재무회계팀으로 넘어가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 단계 역시 계약 단계와 마찬가지로 사업부서에서 직접 하지 못하고, 재무회계 부서에서 지불하게 되어있는데, 계약과 함께 회계도 사업 부서와 분리하여 혼자서 모든 과정을 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그 이유는 업체와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여 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금은 용역 혹은 공사가 끝난 후 한 번에 지불하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일한 만큼을 지불하기도 한다. 이를 기성고라 부른다.
7단계 : 인수인계
대금지급이 끝나면 사업에 대한 홍보자료를 홍보팀에 보내고, 홍보팀은 기업의 홈페이지 혹은 언론사에 보도자료 형식으로 사업을 홍보하게 된다. 또한, 공사의 경우 설비를 운영하는 부서와 정비하는 부서에 인수인계를 해줌으로써 모든 사업을 완료를 하게 된다. 이후에는 운영부서에서 운영을 하고, 정비사항이 발생하면 정비부서에서 정비를 하게 되며, 이 모든 단계가 끝나면 일 년에 한 번씩 감사팀에서 감사를 시행한다. 업무 과정에 규정을 어긴 것은 없는지 절차를 잘 준수했는지 등이 감사의 대상이다. 이렇게 일 년간 했던 모든 일에 대한 감사가 끝나면 맡았던 사업에 대한 업무가 끝난다.
지금까지 공기업의 실무에 대해 알아보았다. 공기업이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직영이 아닌 입찰을 통해 진행되므로 업체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고, 함께 사업을 추진해가는 협업 능력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면접에서 "팔로워와 리더 중 어떤 성향이냐?"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공기업 직원은 주로 감독 역할을 많이 한다. 너도 감독, 나도 감독, 각자 본인의 사업에 대한 감독 역할을 한다. 한 가지 사업을 가지고 2~3명이 팀을 이뤄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팔로워 할 일이 없고, 그래서 팔로워 성향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 팔로워가 나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팔로워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사업계획에서는 기획력, 설계에서는 분석력, 입찰계약에서는 대인관계능력, 감독에서는 계획성과 리더십, 검사와 대금지급은 세밀함, 꼼꼼함, 책임감, 인수인계에서는 대인관계능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업무를 할 사람을 필요로 하므로 각 단계별 필요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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