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마지막이란,
어제 책을 읽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데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전혀 그럴만한 분야의 책도 아니었던 것이, '주식회사 6학년 2반'이라는 어린이 경제동화였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어려운 경제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 1년 동안 함께 했던 6학년 2반 아이들의 '마지막' 이야기가 나온다. 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것이니까 6년간 다녔던 학교와도 영영 이별인 셈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이렇게 '마지막' 이란 단어는 나에게 만남과 이별 중에 이별을 담당하곤 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늘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낯을 가리고 쉽게 정을 주지 않는 탓에, 한 번 마음을 주고 나면 그 마음을 다시 주워 담기 어려웠다. 함께했던 시간이 지나고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오면 못내 아쉬워서 발걸음을 떼질 못했다. 곁에 있을 때나 잘할 일이지, 떠나고 나면 왜 더 그 마음이 커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미련이 덕지덕지 붙은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이란 단어는 늘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그랬던 '마지막'이 이제 바뀌었다. 아니, 그 마지막을 대하는 내가 바뀐 것이겠지. 요즘에는 마지막이란 단어가 좋다. 마지막을 바란다. 열심히 달려서 도착한 마지막 결승선.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낸 마지막. 헤어짐의 아쉬움보다는 해냈다는 성취감을 주는 마지막.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끝, 마지막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을 주는 마지막. 내 삶을 더 정돈하게 만드는 단어, 마지막.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마지막까지 해내지 않으면 끝낼 수가 없다. 그래서 마지막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하니까. 이 세상에 잘나고, 대단했던 사람 중에 끝까지 그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고 추해졌던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결국 사람들은 마지막을, 아니 마지막만 기억한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어도 마지막에 죄를 저질렀다면 그 사람은 범죄자다. 반대로 범죄자였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다 간다면, 그 사람은 칭찬과 인정을 받는다. '초심을 잃지 마라'라는 표현은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내 마지막이 궁금하다. 이 노력의 끝은 무엇일까? 이렇게 하면 정말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동시에,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삶을 살아야지 다짐한다.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처음과 마지막이 같은 사람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