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사고형)엄마로 산다는 것
둘째가 처음으로 자기 돈으로 장난감을 샀다.
용돈을 받아 차곡차곡 모으는 오빠의 모습이 내내 부러웠나 보다. 자기는 돈이 하나도 없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이 맘에 쓰여 십시 일반 했다. 나와 남편이 준 오백 원짜리 동전, 할머니가 준 오천 원짜리, 할아버지가 준 천 원짜리 5개. "와, 돈 엄청 많네! 부자네, 부자야!"라고 치켜세워주니 진짜 부자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는 것이 귀엽다.
머리를 다친 후로 야외활동을 할 수 없는 아이가 짠해서 남편이 함께 있는 어제, 가족끼리 소박한 카페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아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마음을 보태준 덕에 나도 기프티콘 부자다! 늘 디저트 시키는 것엔 인색한 엄마였는데 오늘은 각자 먹고 싶은 것 하나씩 사주기로 마음먹었다. 로봇 청소기를 돌리느라 나가기로 생각했던 시간보다 늦어져 서두르는데, 아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한다. 몇 번 찾아봐도 나오질 않아서 일단 나갔다 다녀와서 찾자고 이야기했는데 꼭 찾아야만 한단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를 다그치고 일단 외출부터 했을 텐데 이젠 그래, 서두를 거 뭐 있나 싶어 기다려주었다. 한참을 찾다 이불 속에서 지갑을 찾아온 아이는, 그 안에 든 돈으로 카페에서 엄마 맛있는 걸 사주겠단다. 벼룩에 간을 빼먹지!
내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잠시 멈추어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아이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기다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아이의 마음이다. 그동안 얼마나 이 아이의 따스한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던 걸까. 아이의 마음이 닿기도 전에 뒤돌아섰던 그날들을 후회한다. 지난 2주간의 입원생활은 내 시간 좀 가져보겠다고, 자기 계발을 좀 해보겠다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돼보겠다고. 미래의 행복한 우리 가족을 위해, 지금 내 옆의 가족에게 소홀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눈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그래서 바뀌었다 나는,이라는 건 착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깐 들린 마트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자기 돈으로 장난감을 샀다. 3천 원짜리 산리오 랜덤 키링. 계산을 끝내자마자 얼른 열어주라고 성화더니 키링이 나오자마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헬로 키티를 기대했는데 처음 본 어떤 것이 나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툴툴거리길래 착한 엄마 버전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건 포켓몬빵 먹고 나오는 띠부띠부씰처럼 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래서 또 산다고 해도 헬로 키티가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가 없어." 아이가 이것이 랜덤 키링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러나 싶어 한 설명이었다. 그랬더니 아이 왈, "띠부띠부씰도 강한 포켓몬보다 약한 포켓몬이 나오면 속상하잖아요. 그런 거랑 똑같은 거예요." 아,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속상한 것이로구나.
집에서도 계속되는 아이의 투정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던 차에 남편이 아이를 부른다. "하온이가 이 캐릭터가 뭔지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으니까 아빠랑 이 캐릭터에 대해서 알아볼까? 얘는 '트윈스타 라라'래. 하온이가 좋아하는 헬로 키티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아빠는 트윈스타 라라도 예쁜데?" 그러더니 사이좋게 트윈스타 라라에 대해 찾아보고 함께 영상을 본다.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저렇게 마음을 알아주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거구나. 이제 좀 알겠다 싶었는데 아직 멀었다. T(사고형) 엄마는 당당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