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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r 01. 2021

괴물과 불꽃

글의궤도 5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나는 목격자다. 하지만 망설임 가득한 방관자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행렬 속에서 나는 내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어제 또 한 사람이 사라졌다. 그것도 꽃다운 21살. 어쩌면 꽃망울 정도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이 외쳐대는 정의가 대체 뭔지.




 "난 모르겠어.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일인지."




 A는 내 말에 아무 반응없이 그냥 침묵했다. A의 침묵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는 그 청년의 실종을 뒤로 한채 유유히 맥도날드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자주 가는 맥도날드 앞에서도 맹렬한 시위가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행진 사이에 생긴 틈을 통해 빠르게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나는 뒤도, 옆도 안돌아보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오른발이 움찔했지만 이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A는 추가로 받아온 케찹에 기계적으로 감자튀김을 찍어 먹었다. 내 시선은 그 감자튀김을 따라갔고 더 올라가 A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렬이 담겨져 있었다. 마치 흐르는 강물 같았다. A는 그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 봐?"




 A가 뭘 보고 있는지는 알았지만 나는 괜히 물었다. A는 의외의 말을 했다.




 "디저트 먹으러 갈까?"




 인파를 보며 정의에 대한 일장연설을 펼칠줄 알았는데 너는 의외로 우리의 다음 행선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어지는 인파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조금 후에 들리는 폭발음. 강물 위에 돌멩이가 던져진듯 일정하게 이어지던 행렬이 잠시 흔들렸다. 그 폭발음이 퍼진 후 가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앉아있던 테이블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으며, 어떤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중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잠시 망설였던 것 같다.




 "카페 갈래?"


 "그래."




 폭발음이 사그라든 후 나는 A에게 카페에 가자고 제안했고 자주 가는 카페에 가기 위해 건물을 나섰다. 잠시 흔들렸던 행렬은 다시 반듯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또다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길을 만들어갔다. 건너편으로 왔을 때 A는 없었다. 나는 혹시나 A가 빠져나올까 그 행렬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나는 A를 찾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쪽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로 걸어가고 있었지만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풍경에 빠져들 때쯤 A가 나왔다. 그 짧은 순간 행렬을 뚫고 나온 A 역시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똑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저기 괴물이 있어."


 "괴물?"


 "모든 사람들이 저 괴물에게 맞서기 전까지는 없어지지 않을거야."




 안하던 말을 갑자기 하는 A를 나는 의아하게 바라봤다. 어쩐지 조금 낯설어 보이는 A, 한편으로 그 사이 키가 좀 큰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다. 날이 어두워지자 행렬 가장 앞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괴물이 보였다. 나는 그 흉측한 어둠에 약간 주춤했으나 괴물의 실체를 확인한 후에는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다시 행렬 안으로 들어가려던 A의 손목을 잡았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돌이라도 하나 놔야지. 언젠간 다리가 되면 그 돌 하나 놓은게 얼마나 영광이겠어."




 그 말에 나는 손을 놓았다. A의 환한 미소에 나는 그만 손에 힘이 빠져버렸고, 또 한번 불러볼 기회도 없이 A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뒤로 A를 볼 수 없었다.


 행렬은 계속 이어졌으나 화력은 에전 같지 않았다. 이전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 행렬이 작아지면 나는 불안했다. 이 행렬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눈으로 확인해버린 괴물이 우리를 집어삼킬까 두려웠다. 나는 흘러가는 행렬을 바라보다 앞에 있는 괴물을 보았다. 애초에 내가 봐야했던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앞에 자리잡고 있는 괴물이었다. 저 괴물에게 나의 시선이 고정된 순간 이 행렬은 더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명, 한명이 작은 촛불이었다.


 저 불꽃들 사이로 사라진 A가 보였다. 이 자리에 나온 나를 보며 지금 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때 그 웃음이었다. A는 다시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망설임은 끝났다.


 우리는 불꽃 속으로, 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서툴게 쓴 글이다.




슬픈 사건 또는 불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다양한 삷을 그리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과 그 영향력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




각자 다르더라도 결국에는 이 사회의 어둠, 그것이 슬픈 사건이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이든, 이것에 모두가 함께 맞설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내가 행진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포부는 아니었다. 다리를 만드는데 돌 하나가 부족해서 완성되지 못했다면 내가 그 돌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부채감이 너무 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둠에 맞서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많은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처가 생기더라도 그 흐름을 택했기 때문에 비로소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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