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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r 01. 2021

매일 쓰는 유언

글의궤도 5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일 남짓 되었다.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도전한 나의 올해 첫 프로젝트이다. 벌써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스무 편 가량을 연애 이야기로 풀어볼까 했었다. 사랑의 형태에는 다양한 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의 연애 이야기가 가장 재밌는 법이니 해봄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편을 쓰고 나는 나가떨어졌고, 못 해 먹겠다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애초에 나에게 희극을 쓸 재주는 없고 엉망진창 결말로만 20일을 버티기에는 내가 질려버릴 것 같았다. 시작할 때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아주 쉽게 내 밑천을 드러내는 행위여서 모든 곳에 나의 모습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며칠 만에 깨달았다. 그리고 내 안의 이야깃거리라는 것은 참 보잘것없다는 사실 역시 매일 아프게 인정하고 만다.


스무 살 이후로 이렇게 본격적으로 무엇인가에 열심히 몰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짜내는 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기뻤다. 이른 새벽, 늦은 밤중, 퇴근 후 운동을 하러 가기 전의 짬, 언제든 나는 살아 있음을 실감하면서 자판을 두들겼다. 나는 왜 이렇게 하는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이 글쓰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했고 지금도 이 고민은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통해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지금 나의 글쓰기는 매일 쓰는 유언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내가 언제 죽을지를 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철모르는 생각이었지만 지금도 사실 이 생각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지만 언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다. 내 삶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해진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있다고 한들 나에게 그것에 대해 알 권리는 주어지지 않을 거다. 그러니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사람이고, 살아 있으니 그건 당연한 순리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매일의 글쓰기’에 온 정성을 쏟을 수 밖에 없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읽을 만한 무언가로 만들어 남겨 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내가 이 삶에서 하는 마지막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거라면, 글쓰기가 좀 더 개인적이 된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지 않을까 한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지면을 빌려서나마 전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좀 더 남는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아주 어릴 때, 기억이 선명한 나이 중 지금의 나이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시기에도 나는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어디에서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두 떠오를 정도로 꽤나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이었는데 나는 그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누가 슬퍼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던 것이 생생하다. 그렇게 혼자 울다 잠들었던 것 같다. 약속 없는 이별을 안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이 무게를 견디며 매일의 글을 쓴다. 어떤 형태로든 나의 글이 남아 나를 추억할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게을러질 수 없다. 이 기약 없는 슬픔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한 뒤로 나는 나의 삶에 조금 더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 원해서 얻은 삶이 아니지만 이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은 나의 의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고 감시하는 사람도 없지만 글을 쓰는 건 내가 또 하나의 형태로 나의 생에 표하는 깊은 경의이다. 오늘도 이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 더 내딛어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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