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팔아버린 맥북에게

200만원이 넘던 맥북이 18만원이 되버린 순간

by 유영

'하고싶은데 하지 못한 말'에 실린 글은 편협하고, 일방적이고 , 편향적이고, 비논리적이고,비도덕적이고, 때론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자기검열을 하고 대화 하고 있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느라 극단적인 의견대립을 피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내 생각을 최대한 자유롭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헐값에 팔아버린 나의 맥북에게


맥북아 안녕. 6년간 정들었던 너를 헐값에 팔아버려서 미안해. 너를 사가는 아저씨는 그것도 많이 쳐준 거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6년 전만 해도 200만원을 넘는 고가의 모델이었던 네가 이제는 웬만한 외장하드 값보다도 못하게 된 걸 보니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 네 값어치를 떨어지게 만든 건 다 내 잘못이야. 상판에 찍힘과 스크래치로 인해 10만원이 깎이고, 하판의 나사분실로 인해 5만원이 깎이고, 배터리 수명이 오래되어 교체해야 한다고 6만원이 또 깎이고…… 갖은 이유로 계속 깎이고 깎이더라…...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나는 너에게 많은 상처를 줬지만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줬어.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아직도 나는 너랑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 영화과 학생이었던 나는 파이널컷프로(Final Cut Pro는 애플사가 개발한 편집 프로그램이다. 영화편집실무에서 주로 사용되고, 윈도우가 아닌 맥 운영체제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를 사용해야 했는데 맥북이 없던 나는 맥이 설치되어있는 학교 편집실에서 매일 밤을 새우곤 했지. 돈 있는 동기들은 하나둘 맥북을 샀고, 돈은 없지만, 시간이 있던 대부분의 남자 동기들은 방학을 이용해 막노동해서 번 돈으로 맥북프로를 사서 들고 다녔지. 노트북에 시동이 걸릴 때 ‘띵~’하는 소리와 반짝이는 사과 불빛이 그렇게 눈부시더라. 그 모습이 부러웠던 나는 때마침 영상편집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고, ‘벌어서 갚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12개월 할부로 맥북 너를 품에 안게 되었지.

택배로 오는 너를 바로 받지 못하면 누군가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학교로 시켜서 네가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어. 배송요청사항에 ‘중요한 물건이니 꼭 주인에게 전해주세요! 전화해주세요! 아무 때나 나갈 수 있습니다! 꼭! 부탁드려요’라고 써놓고 혹시 택배 아저씨가 수업 중에 전화해서 통화가 안 되면 아무에게나 맡길까 봐 수업 시간 내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기다렸지. 다행히 수업이 끝나고 너는 도착했고 나는 네가 담긴 하얀 상자를 들고 빈 강의실에 홀로 앉아 마치 의식을 치르듯 너를 꺼냈지. 사용자 설정에 내 이름을 새기고, 비번을 정하던 그 짜릿한 순간, 손끝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해. 스물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내 돈으로 처음 산 고가의 노트북이었으니까. 그런데 스물아홉 살이 된 지금도 너보다 비싼 물건을 사본 적이 없어. 그래서 너는 지금까지도 내 최고의 보물이야. 물론, 네가 꼭 비싸서만은 아니야. 영화감독을 꿈꾸던 나에게 너는 그 꿈을 이룬 것 같이 느끼게 해주는 도구였으니까. 난 너의 도움을 받아 3년간 시나리오 10편을 썼고, 지금 보면 눈 뜨고 못 봐줄 내 단편 영화들을 편집했고, 영상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 수 있었지.

네 덕분에 나는 계속 꿈을 꿀 수 있었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었어.


졸업 후엔 사무실에서 제공해주는 노트북을 사용하다 보니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아주 가끔 편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너를 사용했고, 파이널컷 보다 엑셀을 주로 사용하게 된 나는 맥보다는 윈도우가 편해져서 다른 노트북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지. 그렇게 너를 방치하다보니 어느덧 너는 많이 늙어있더라. 네 몸에 난 스크래치 하나하나가 내가 너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생겨난 것들인데, 누군가는 그걸 네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거로 평가하게 되었지.

많이 늙어버린 너를 팔기 위해 네 안에 있던 많은 자료를 백업하면서 예전에 내가 쓴 글과 작품들을 오랜만에 다시 한번 보았어. 그리고 그때 함께한 사람들, 함께했던 공간들,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어. 겉모습은 많이 상했어도 네 안에 있는 것들은 6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더라. 그에 비해 나는 예전의 내가 생각지도 않은 모습을 하고 있지. 6년 전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영화를 쓰고 만든다는 것이 너무 벅찼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매일같이 시나리오를 썼어. 메모장엔 항상 시나리오 아이템이 넘쳐났고, 세상의 불합리한 것은 무엇이든 비판해야 했지. 열정적이었고 투쟁적이었지. 돈은 좀 못 벌어도 계속 영화를 쓰고 싶었고, 만들고 싶었어. 극적인 반전, 화려한 액션으로 관객들의 눈요기를 펼치고 흥행에 성공하는 상업영화가 아니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 스물세 살의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열정이 쏟아지는 것, 주변 사람들이 비난하던, 무시하던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근데 내 목소리를 내면 사람들은 나를 무시했어. 안타까워했어. 걱정을 앞세워 무시하고 조롱했지. 그게 돈이 되냐고, 그걸 하면 성공할 수 있냐고.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던 것뿐인데, 세상은 결과물에만 관심이 있고, 돈으로 환산하려 했어. 꿈이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돈이라는 것이 된 걸까. 왜 모든 일은 돈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적어도 스물세 살의 나는 돈을 좇는 이들을 비난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나의 모습은 그들과 다를 게 없더라. 참 많이 부끄러웠어.

지난 세월 동안 네 모습이 다치고 변한 것처럼 나 또한 많은 일에 치이며 변해버렸어. 내가 꿈꾸던 이상은 언제나 멀었고, 내 앞의 생활은 가깝더라. 돈 같은 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임금도 못 받으면서 영화사 사무실에 출근했어. 점심 사 먹을 돈이 없어서 남자친구가 보내주는 기프티콘으로 빵을 사 먹으며 점심을 때웠어. 부당한 노동착취를 고발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저 영화가 잘되면 다 고생한 스태프들덕분 이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열심히 일 할 뿐이었지. 3달이 되도록 월급을 받지 못해 결국 뛰쳐나왔는데 그때 나는 생각했어. 내 생활에 위협이 된다면 그 무엇도 의미 있는 건 없다고. 그 때부터 였는지 몰라. 의미 있는 일을 좇기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더 신경 썼어. 그게 돈을 쫓는 꼴이 되었는지 몰라.


나는 언제나 꿈과 현실 그 경계선에 서서 줄타기를 해. 너 역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내 통장잔고에 18만 원이라는 숫자로 남았어. 그 숫자는 아마 핸드폰요금,교통비,커피값 등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겠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 동안 꿈꿔왔던 꿈, 시간, 사람들은 오래오래 간직할게. 그렇게 너를 기억할게. 그리고 그때의 나를 기억할게. 소중한 시간을 지켜줘서 고마워.



부족했던 너의 주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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