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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Dec 07. 2023

신을 위한 변명

<신학, 하느님과 이성>, 미하엘 제발트 

그러므로 신학의 과제는 변신론 문제를 정지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예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계의 악과 고통과 불행에 직면하여 신학을 통해 이루어지는 뒤늦은 어느 정도는 고집스러운 '하느님 정당화'의 시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세계의, '그가 만든' 세계의 끝없는 고통의 역사에 직면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필자의 눈에는 신학의 질문 중 질문이다. 이 질문이 신학에 의해 제거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에 대한 과도한 답이 주어져서도 안된다."
제8장 계셔야 하는 한 분이신 하느님, 286쪽


1. 믿을 수 없는 신


신이 정녕 전능한 존재라면, 왜 그 전능한 신이 만든 세계에 이렇게 악이 창궐하는가? 


이성의 질문에 신앙은 납득할만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신을 위해 여러 가지 변론들이 나왔지만, 악이라는 논점을 비껴가거나 축소하거나, 악을 막기 위해 신을 오히려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2. 실패한 변론들


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선이 결핍된 현상에 불과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변론: 악으로 인한 고통과 고통받는 사람들은 실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결핍 이론은 그에 대한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한다.

악이 교육적, 영성적, 미학적으로 필요하기에 고유한 가치를 가졌다는 변론: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콜로 1,24)라는 신앙 고백처럼, 누군가는 고통을 통해 성숙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 주관적 차원의 문제로 변신론 자체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특히, 그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자연재해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하느님이 전능을 빼앗기고 고난을 함께 하고 있다는 변론: '아우슈비츠 때 하느님은 어디 계셨는가?' 그때 하느님의 침묵은 신이 자신을 전능성을 포기하고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어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변론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하느님을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위하여 악이 존재해도 어쩔 수 없다는 변론: 인간이 모든 악과 고통을 유발한다. 결국 우주에 신은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게 된다.

더 나은 세상은 없다는 변론: 마치 중력 법칙과 같이, 현재의 세계에 나타나는 악은 더 큰 악을 막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악이자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와 같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살해된 어린아이 앞에 지금의 세상이 최선이라는 것이 과연 납득할만한 설명이 될까?     

   

3. 신앙, 고집스러운 희망


만족할 만한 설명이 주어지지 않은 변신론 문제는 결국 신앙을 위협하는 것일까? 우리는 아무런 답도 없이 침묵하는 신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제발트는 여기서 파스칼과 볼테르, 그리고 칸트를 통해 신이 아닌 '신앙'에 대한 변론을 시작한다. 


파스칼: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 것은 유용하다. 설령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볼테르: 하느님이 없다면 인간은 하느님을 만들어야 한다. 

칸트: 윤리적 규정은 바로 나의 준칙이므로 나는 하느님의 현존과 내세의 생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세계에서 신은 부재하고, 악과 고통은 실재한다. 분명 신은 이 세계에서 결코 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신은 그저, 묵묵히, 마땅히 '희망되는' 관념이다. 그렇게 신앙은 신의 부재와 신에 대한 희망이라는 양가성과 마주하며 위태롭고도 꿋꿋하게 존재한다.    


십자가 위의 예수 역시 그러하였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라는 탄식과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라는 선언 사이에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십자가 아래 인간은 그저 희망을 가지고 대답하려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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