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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Feb 13. 2024

당신은 꿈꾸고 있는가

뮤지컬 <일 테노레>


1. "합시다, 오페라! 조선 최초 오페라!"


1930년대 경성, 일제의 탄압 속에서 공연을 할 수 없게 된 항일단체 문학회 회원들이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이태리 창극’이라는 낯선 공연을 기획한다. 오스트리아의 침략에 맞선 베네치아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I Sognatori- 꿈꾸는 자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뭉친 학생들. 세브란스 의대생 윤이선은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조선 최초의 테너가 되고 싶은 꿈을 키운다.  


대극장용 한국 창작 뮤지컬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들이 있다. 스타 캐스팅, 선악 구도에서 고뇌하는 남자 주인공, 성녀 아니면 창녀의 여자 메인-서브, 희생당하고 회상되는 어린이, 신파 코드 어머니, 오선지 넘어 덧줄에서만 이어지는 고음의 연쇄.. 관객들의 평균적인 취향을 적당히 버무리기만 하는 블록버스터 같은 장르물의 한계를 벗어나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초연 중인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대해서는 정말 놀라운, 수작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작품이 또 있었을까. 



2. "나 계속 쉬지 않고 숨이 가빠올 때까지 마음껏 소리쳐/ 크게 더 크게 / 온 세상이 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 위기에 빠진 일본 독점자본은 본토 - 조선 - 만주를 잇는 블록화 경제권(1940년 대동아공영권으로 이어지는)을 구상한다.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가 있었으며, 그 여파로 1920년대의 문화정치는 민족말살 정책으로 통치 방식이 전환된다. 내일의 희망이란 찾아볼 수 없는 불온한 시대였다. 


하지만 1930년대 경성은 제국주의와 모더니티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이질적인 시공간이기도 했다. 도시화로 인해 대중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식민지 근대화에 빠르게 편입된 세대가 탄생했다. 민족적 자각이나 독립에 대한 갈망 보다 개인의 일관된 주체성과 욕망을 중요시하는 개인주의의 도래. 열두 살이면 조혼을 하던 조선에서 ‘연애’라는 새로운 풍속이 나타난 때이기도 하다.   

 


3. “가네, 멀어지네/ 빛바랜 희망이 됐네/ 나의 오 나의/ 찬란하던 꿈이여”


<일 테노레>는 1930년대 경성이라는 억압과 모순의 결절점에서 태어나는 주체적 인간, 막막한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의 신념에 대해 정직한 태도를 가지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진정한 희생을 감수하며, 다른 이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의 선택을 믿는 이야기. 비록 서로가 추구했던 삶의 진실은 다를지라도, 함께 만들고자 했던 희망은 모두에게 영원히 찬란한 꿈으로 남아 있다.     


극 중 윤이선이 평생에 걸친 회한을 담아 부르는 피날레 곡 ‘꿈의 무게’를 들으며 생각해 본다. 삶이라는 무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나는 무대를 그저 객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유령인가, 아니면 그 무대 위에 선 ‘I Sognatori-꿈꾸는 인간’인가.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대본, 음악, 가사, 연출, 연기, 무대 모든 부분에서 흠잡을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번 달 25일이 마지막 공연인데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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