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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역사 (2)

<가족화단> 물을 주며 자라난 것들.

by 리지사비


<2> 물 주는 게 가장 싫었어요..!


우리 집 마루 한가운데엔 늘 '가족 화단'이 있었다.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면서 물을 주는 건

가족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물을 붓고,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다시 붓는 일.

그 단순한 반복이 어린 나에겐 유난히 지루하고 버거웠다.

숙제를 핑계 삼아 빠지기도 하고, 감기 기운이 있다며 슬쩍 도망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내 차례만 더 자주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화분’이나 ‘화초’가 아닌 ‘가족화단’이라 부른 건

자연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빠 덕분이었다.

이사할 때마다 마루의 4분의 1쯤을 흙으로 덮고

식물을 심어 늘 새로운 화단을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거쳐온 집의 마루 구조와

그곳에 놓였던 식물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1

<여덟 살> 가족의 첫 화초


이 때는 ‘화단'보다는 '화초'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시기로

좁은 아파트 마루 한켠에

스무 촉 남짓한 동양란을 들여놓은 게 전부였다.


회색빛 혹은 은은한 빛깔의 도자기 화분마다

가느다란 난이 한 촉씩 심겨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늘 말했다.

“조심해! 난초 깨뜨리면 큰일 나!”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기 시작했다.

“식물에게 물을 주는 건 밥을 주는 일이지.”
아빠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난은 보통의 화분들과 달리

자그마한 돌멩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물을 부으면 뿌리가 영양분을 흡수할 겨를도 없이

잽싸게, 돌멩이 틈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그렇기에, 물을 제대로 주기 위해서는

스며들 수 있도록 꽤나 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우리는 화분을 하나씩 베란다로 옮겨 일렬로 세워놓고

큰 바가지에 물을 가득 채워 담갔다 빼고, 또 담갔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에 틈틈이 마른걸레로 난초 위의 먼지들을

마치 엉킨 머리를 빗겨내듯 조심스레 닦아냈다.


지금 돌아보면,

잡생각 없이 순수한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평화로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그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고 싫었다..




#2

<중학생> 첫 가족화단


중학생이 되던 해,

아빠는 마루 위에 ‘진짜 화단’을 만들었다.


나무 바닥 위에 큰 화단이라니,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단단한 돌멩이로 틀을 세우고,

방수 비닐을 여러 겹으로 재단해

베란다만 한 크기의 흙 화단을 완성했다.


이끼, 계절꽃, 풀, 열매 맺는 작은 나무까지—

그 안에는 작은 생태계가 자라났다.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좋았다.

물 주기 위해 화분을 오가던 수고도 사라졌다.

이제는 호스를 연결해 물을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행복과 함께 오는 게 시련 아니겠는가..


일주일에 한 번 물 주는 시간이 짧아짐과 동시에

‘화단 단장'이라는 새로운 일이 생겼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애주기를 다하는

식물이 있다 보니 새로운 작업이 추가되었다..

흙을 뒤엎고, 생을 다한 식물을 걷어내고,

다시 화단을 정비해야 하는 매우 고된 일이다.


물론 아빠, 엄마의 고생에 비하면

흙이나 화초 나르기 정도의 작은 작업이었지만..

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가며 도왔다


흙과 식물을 직접 만져도 보고 (물론 벌레도..)

새로 심긴 식물들을 관찰하다 보니

그 시간 속에서 식물의 이름을 외우고

좋아하는 꽃이 하나둘 생겼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식물은 ‘만냥금’


앵두처럼 작고 붉은 열매를

사시사철 떨어뜨리지 않고 맺는,

끝까지 붙잡고 있는 강한 식물이었다.


아빠는 만냥금을 볼 때마다 말했다.

“열매를 오래 맺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니“


그땐 화려한 꽃에만 눈이 갔지만

지금은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가족의 정성을 듬뿍 받은 만냥금이

우리에게 건넨 가장 큰 감사 인사를

아빠는 이미 알아차리셨던 걸지도 모른다.





#3

<스무 살> 여전히 자라나는 마음


화단에 함께 물을 주던 어느 날,

아빠가 물으셨다.

“식물의 뿌리는 꼭 흙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럼요. 흙의 양분을 먹고 단단히 버텨야죠.”


그런데 그때,
아빠는 바위에 붙은 화란을 보여주셨다.
뿌리를 드러낸 채,
바위 위에 단단히 붙어 있는 초록빛 식물이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뿌리가 꼭 흙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강하게 살아가는 방식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걸.


작은 식물들에게서

작지 않은 교훈을 얻는 날들이 쌓이며,

가족 화단은 내 삶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4

가족 화단의, 의미


여전히 가족 화단 작업은 진행 중이다.


지금 본가의 화단은

그간의 노하우를 더해

아빠가 직접 설계하고 완성한 공간이다.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자라고 있다.


어느날 문득, 물을 주다 궁금해졌다.

“아빠는 왜 식물을 좋아하세요?”


아빠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어렸을 때 스승님 댁에서 하숙을 했었는데

형편이 어려우니까 집에 자주 못 가고

부모님 얼굴도 자주 못 뵈었지.

그 때 그 집에 화단이 있었어.


물을 주고 관심을 주는 만큼

꽃을 피워주고 열매로 보답하더라.

그게 참 위로가 됐던 것 같아. “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가족 화단을 함께 가꿔온 세월 동안

나는 왜 한 번도 이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

.

그 답을 듣기까지

거의 30년이 걸렸다.


친구의 마음엔 누구보다 빨리 공감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엔 이렇게나 늦게 닿다니…


돌이켜보면

아빠는 가족의 삶 어딘가에 늘

‘식물이라는 새싹’을

‘식물이라는 DNA’를

조용히 심어오셨다.


그 마음이 닿은 걸까.


내 공간에도

언제나 식물이 함께 산다.




#에필로그

엄마의 이야기.


“너희 아빠는 첫 데이트 때도

꽃이 아니라 화분을 줬어.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하하….”


그 말에 다 같이 웃었다.



내 삶에도

식물이라는 작은 새싹이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채

아직도 천천히 자라고 있다.


<가족 화단의 일부 찰칵>


#식물의역사

#가족화단

#자라는것들

#그래도물주는건아직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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