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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Apr 25. 2016

‘먹튀’ 자본과의 전쟁

조세피난처 이용한 탈세 행위

사회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어 

국제사회의 비판 목소리 높아 

공조를 통한 규제 강화 기대 


로마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로마제국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번영의 정점은 몰락의 출발점이었다. 쇠락을 피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도한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섣부른 개혁은 오히려 쇠락을 가속화했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쇠락을 예감했다. AD 180년 그의 서거와 함께 오현제(五賢帝) 시대, 나아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도 막을 내렸다. 아우렐리우스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진중(陣中)에서 보냈다. 어제는 도나우강, 오늘은 라인강 주변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아우렐리우스는 무력감을 느꼈다. 제국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국경은 늘 불안했다. 그래서 불후의고전 ‘명상록’에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로마 제국의 재정도 바닥을 드러냈다. 재정 고갈에도 세금을 늘리는 것은 피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개인 재산을 처분한 후 전비(戰費)로 충당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증세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시했다. 증세가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그는 수시로 지방에 감독관을 보내 지출을 억제하는 동시에 세금부담을 낮추라고 지시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우려는 맞아떨어졌다. 제국을 유지하려면 정교한 국가 운영 노하우가 필요했다. 합리적 재원 조달도 필수였다. 불공평한 과세는 국민의 불만을 높이는 동시에 탈세 유인을 제공한다. 후임자들은 이런 문제를 간과했다. 


후임 황제들은 쉽고 편리한 방법을 선택했다. 제일먼저 손을 댄 게 ‘통화가치 절하’였다. 은화(銀貨) 데나리우스의 은(銀) 함량을 줄여나갔다. 데나리우스의명목가치는 그대로였지만 실질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데나리우스 가치 조작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물가가 크게 치솟았다. AD 200년께 밀 1부셸(27.2㎏)을 사려면 10 데나리우스로충분했다. 하지만 270년에는 200 데나리우스로 치솟았고, 344년에는 200만 데나리우스로 뛰어올랐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현물 경제 의존도를 높였다. 화폐가 거래의 편의를 돕는 게 아니라 불편을 가중시켰다. 병사들조차 월급 수령을 거부했다. 데나리우스를 사용할수록 손해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분할하는 한편 재정 안정을 위해현물 납세를 도입했다. 조세 개혁을 위해 인구와 토지 조사도 단행했다. 현물 납세는 관리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작은 정부’를 추구해야 할 상황에서 ‘큰 정부’를 택했다. 


재정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백성들의 세금 부담도 증가했다. 하지만 세금 부담의 형평성은 무너졌다. 영세농의세금 부담은 오히려 가중됐다. 상당수가 세금 부담을 견디지 못해 대지주들에게 토지를 넘겼다. 


반면 원로원 의원과 대지주는 세금 부담에서 자유로웠다. 원로원 의원은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더라도 평생 면세 특권을 누렸다. 대지주는토지 등급을 끌어내리기 위해 뇌물 공세를 펼쳤다. 토지 등급이 떨어질수록 세금도 줄어들었다. 


탈세 경쟁은 로마제국 전역, 모든 계층으로 확산됐다. 애국심에 호소해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살고싶으면 탈세에 가담해야 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납세기반 와해는 로마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파나마 페이퍼스’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지도층 인사들의 탈세 의혹은 지구촌 곳곳에서 공분을 사고 있다. 아이슬랜드 총리가 퇴진한 데 이어 영국 총리도 퇴진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세금 회피 목적의 인수합병에 제동을 걸었다. 제약업체 화이자는 아일랜드의 보톡스 생산업체 앨러건의 인수 계획을 백지화했다. 미국 정부가 화이자가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로 본사를 옮기더라도 미국의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는 아무나 가능한 게 아니다.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에 의한 탈세가 횡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산요소 가운데 노동이나 토지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탈세를 일삼는 ‘먹튀’ 자본은 무임승차자다. 사회가 제공하는 편익은 고스란히 누리면서 비용분담은 외면한 채 해외로 내뺀다. 


‘먹튀’ 자본에 대한 규제는 정의의 실현이다. 자본에 대한 규제는 국제 공조를필요로 한다. 다행히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주도의 ‘먹튀’ 자본 규제를 기대해본다. 


참고 문헌 

1)            Adams,Charles. 2001. For Good and Evil : The Impact of Taxes on the Course ofCivilization. Maryland. Madison Books. 

2)            Palan,Ronen et al. 2010. Tax Havens : How Globalization Really Works. New York.Cornell University Press.  

3)            OECD. 1998.Harmful Tax 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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