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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May 03. 2016

절대권력의 종말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은 제한적

끊임없는 견제로 일방통행 저지

성실한 설득으로 협력 확보해야 

정책의 현실화 가능성도 높아져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는 아마 이 자리에 앉을 거야. 가엾은 아이크! 대통령이라는자리는 군(軍) 사령관과는 달라.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걸 해라', '저걸 해라'라고 지시하겠지만 아무 일도 되는 게 없을 거야. 아이크는 이 자리가 큰 좌절감을 안겨준다는 걸 곧 깨닫겠지."


무서운 언참(言讖)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공화당은 아이젠하워를 내세워 20년 만에 백악관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이크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군인과 정치인은 달랐다.아이크는 의회 또는 참모들과의 견해 차이나 불화가 지속되면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아이크의보좌관은 "대통령은 자신이 무언가를 결정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야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는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다. 이런 권력을 갖고 있어도 명령만으로는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다. 의회나 국민들을 끊임없이 설득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

 

아이크는 설득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트루먼은 달랐다. 오랜 정치 경험에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정책도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시로 "대통령의힘은 설득력(Presidential power is the power to persuade.)"이라고 강조했다. 


트루먼은 1945년 루즈벨트로부터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 1948년 재선에 성공했다. 연임에 성공했지만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이미 2년 전 의회가 여소야대 구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946년 11월 상하 양원에서 14년 만에 처음으로 지배권을 상실했다. 


트루먼은 오히려 이때부터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대표적인 성과가 '마셜 플랜(Marshall Plan)'이다. 먀셜 플랜은 처음에는 의회는 물론 내각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원조 계획을 밝혔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서유럽 국가들의 안정적인 경제회복을 돕기 위해서였다.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함으로써 미국의 고립을 막으려면 이들 국가의 경제 회복은 필수였다. 


마셜 플랜은 숱한 걸림돌을 극복해야 했다. 먼저 내각에서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국방부는 예산 삭감으로군비 축소에 들어가자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다른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경제 원조는 여러 부처의 예산 감축을 가져왔다. 


의회도 반대했다. 상당수 의원들은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한편 국내 경제 발전을 우선시했다. 미국이 오랫동안 큰 부담을 져야 할것으로 우려했다. 


1948년 3월 미국 상원은 찬성 67표, 반대 17표로 마셜 플랜을 승인했다. 하원도 329표 대 74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마셜 플랜에 찬성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1952년까지 유럽 재건을 위해 140억 달러를 지원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로부터 전폭적인지지를 이끌어냈다. 트루먼은 대표적인 고립주의자

로서 공화당을 이끄는 아서 밴던버그 상원 외교위원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밴던버그는 나중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결성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고립주의자'가 '동맹주의자'로 전향한 셈이다. 트루먼의 성실하고 끈질긴 설득의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밤잠 안 자고 고민해왔는데 결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무력감을 표시했다. 국회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고 권력자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못한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의회는 끊임없이 행정부를 견제한다. 요즘은 대항권력(counterpower)의 힘도 만만치 않다. 노동계를 비롯한 이익단체는 대항권력을 통해 정부의 힘을 뺀다.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의회를 장악했다고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끝났다. 


절대권력은 오래 전에 종언(終焉)을 고했다. 큰 권력을 갖고 있어도 끊임없는 설득과 협력을 추진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권력자가 자신을 낮추면 권력은 강화된다. 반면 권력자가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면 권력은 화석화된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 권력의 본질이다.  


참고문헌

1)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1983. 미국사.홍성사

2)   리처드 뉴스타트 지음. 이병석 옮김. 2014. 대통령의 권력. 다빈치

3)   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2015. 권력의 종말.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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