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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Jun 28. 2016

대리인의 대리인

용병이 왕보다는 자신 위하듯

대리인도 자기의 이익이 우선

주인-대리인구조 복잡할수록 

통제와 관리 부실은 심각해져 


숫자는 이따금 환각을 일으킨다. 외형에 취해 내실을 놓치기 쉽다. 보다 많을수록, 보다 클수록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이면의 위험은 애써 무시한다. 질주를 거듭하다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프랑스의 루이 12세도그랬다. 프랑스 백성들은 그를 아낌없이 칭송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군주로 기억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루이 12세를 무리한 영토 욕심 때문에 패가망신한 군주로 평가했다.


루이 12세는 1498년 즉위와 함께 전면적인 개혁 조치를 취했다. 귀족에게 주는연금을 축소하는 대신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했다. 프랑스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백성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얻었다. 


루이 12세는내정에 성공을 거두자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탈리아 공략에 주력했다. 유럽국가 군주들에게 로마제국은 ‘로망’이었다.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강화하면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더욱이 이탈리아는 교황령과 여러 도시국가들로 분열된 상태였다. 


프랑스 백성들도 이탈리아 원정을 지지했다. 해외로의 영토 확장은 프랑스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다. 백년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을 때였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영국군은 프랑스 곳곳을 유린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국내의 불안 요인도 제거했다. 프랑스는 그 당시 유럽 최강의 육군을 거느렸다. 하지만 보병은 대부분스위스 용병에 의존했다. 용병은 돈을 위해 싸운다. 국내에 많은 용병을 두는 것은 피해야 했다.

 

프랑스군은 출병 한 달 만에 밀라노를 점령했다. 밀라노의 통치자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해 반격했지만 이내 진압됐다. 루이 12세는 밀라노를 정복한 후  제노바까지 손에 넣었다. 


루이 12세는나폴리까지 넘봤다. 하지만 프랑스만으로는 버거웠다. 그래서 스페인을 끌어들였다. 스페인 왕 페르난도에게 나폴리를 분할 점령하자고 제안했다. 페르난도는 나폴리를 점령하자 칼끝을 프랑스로 돌렸다. 루이 12세는 나폴리에서 쫓겨나 밀라노로 돌아왔다. 


루이 12세는큰 망신을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교황은 베네치아를 위협적 존재로 여겼다.  베네치아가 로마 인근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은 루이 12세에게 함께 베네치아를 정복하자고 제안했다. 


베네치아가 멸망 직전의 위기로 몰리자 교황은 마음을 바꿔먹었다. 베네치아가 여우라면 프랑스는 호랑이였다. 큰 화근이 될 게 뻔했다. 교황은 스페인, 영국, 스위스,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은 후 프랑스를 공격했다. 루이 12세는 마침내 이탈리아에서 쫓겨나고 만다. 프랑스는 1513년 동맹군에 패한 후 밀라노까지 내줬다. 


마키아벨리는 루이 12세를신랄하게 비판했다. 역량이 부족한 데도 무리하게 영토 확장 욕심을 부렸다는 이유에서다. 마키아벨리는 “영토 확장 욕구는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나 역량이 떨어지는데도 욕심을 부리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루이 12세는좋은 군대를 갖지 못했다. 용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용병은 신의가 없다. 마키아벨리는 용병은 늘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리인은 용병과 유사하다. 주인과 대리인의 이익이 합치하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리인은 제 몫을 챙기는데 급급할 뿐이다. 주인의 안위나 이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대리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주인과대리인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통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분식회계를 통해 실적을 잔뜩 부풀린 후 이를 근거로 200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은 산업은행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혈세를 지원했다. 대리인이 주인의 돈을 빼돌려 흥청망청 잔치를 벌인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천년만년 대우조선해양을 거느리는 구조라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대리인은 원래 주인의 이익에 둔감하다. 


대리인의 대리인은 더욱 그렇다. 진짜 주인은 먼 곳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다. 주인이 눈에들어오지 않으니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주인의 돈을 빼먹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리인을 관리할 역량이 부족하다면 대리인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게 패가망신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참고문헌 

1)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2016. 프랑스사.김영사 

2)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김경희 옮김. 2012. 군주론.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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