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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Aug 18. 2021

갑자기 생긴 꽁돈의 출처

행복한 소비의 방법

의도치 못한 비상금


 지역 내 거리두기가 4단계로 상향 조정되었다. 따라서 2주 뒤 예정되어 있던 계모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참 안타까운 점은 코로나 때문에 계모임 일정을 3번이나 미루어 왔다는 점이다. 사는 곳도 직장도 다 다른 계모임 멤버들이 날짜를 하나로 잡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닐 테고, 힘들게 잡은 일정도 계속 캔슬이 되어 버리니 아쉬움을 넘어 이제는 지치기 까지 하다. 하지만 웃프게도 다 함께 못 모인 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계모임 통장 속 돈은 어마어마하게 불어 있었다.


 " 코로나 안정될 때까지 계모임 비 스탑 하는 게 어떻습니까?"


 모임의 한 동생 녀석이 말했다. 언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약도 없고, 통장에 돈은 제법 쌓였으니 다달이 곗돈을 내는 것을 한 동안 멈추자는 것이다. 솔직히 매달 나가는 친구들 모임 곗돈만 해도 만만치 않아서 녀석의 의견에 동조를 했다. 그리고 나는 고심 끝에 한마디를 더 거들었다.


"지금 쌓인 돈의 일부를 일종의 재난 지원금으로 뿌리는 건 어때?"  


 어차피 당장 사용하지도 못할 돈, 모임 멤버들에게 재난 지원금 명목으로 나눠 주자는 의견이었다. 우려와 달리 마치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계모임 멤버들은 격하게 환영했다. 대부분 결혼 이후 용돈 받아 사는 인생, 계모임 비라도 각출해서 비상금으로 사용한다면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될 것 같았다. 마치 계모임이 일종의 적금이 되었던 셈이다. 그날 저녁 총무가 각자의 계좌에 1/N 금액을 입금해주었다. 두둑해진 계좌 잔액을 보니 순간 헤펐던 총각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돈 쓰는 방법을 잊어버리다.

  

 맞벌이 부부의 자금 운용법은 부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각자의 월급을 하나의 통장에 합친다. 그리고 저축, 고정비 등을 한 번에 계산 후 우리에게 지급되는 용돈은 각각 30만 원이다. 신혼 초에는 30만 원이라는 금액을 누구 코에 붙일까 했는데, 참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게 해당 금액으로도 개인의 한 달 소비 패턴이 맞춰지는 것이다. 총각 시절 생각 없이 긁어대었던 신용카드 대신 달리 매달 정해진 날짜 정해진 금액을 쓰는 것은 마치 어릴 적 용돈기입장을 쓰는 것과 같았다.


 그러던 내게 갑자기 일종의 비상금이 생기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이 돈으로 무엇을 할지 하루 종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 순간 내가 가진 모든 것에 소비가 필요해 보였다. 전기면도기도 갈아 줄 때 된 것 같고, 아이폰, 아이패드 케이스도 신상으로 바꿔야 할 것 같고, 가을을 대비해서 옷도 좀 사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인터넷 아이쇼핑을 해보았지만 문제는 쉽사리 결제 버튼이 안 눌러졌다는 점이다. 한 달 30만 원을 용돈으로 매달 긴축하게 소비를 하다 보니 과감한 FLEX의 순간에 나도 모를 거부감이 느껴진 것이다. 돈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굳이 이런 거 없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순간의 만족감이지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사로 잡혔다. 그렇게 아직도 내 통장에는 계모임 재난지원금이 그대로 담겨 있다.



행복하게 돈 쓰는 방법


 행복한 소비를 위해선 물질적인 소유나 과시보다 소비를 할 때 직접적으로 겪게 될 경험에 초점을 두라고 말한다. 소비를 통해 겪게 되는 경험이 삶의 행복 증진에 더 영향을 준다는 이상적인 말이 있다. 까놓고 보면 200만 원짜리의 전자 제품을 산 것보다 친구들과 200만 원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지금까지도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계모임 재난지원금이 쉽사리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던 점은 결혼 이후 개인의 물질적인 소유보다 아내와의 행복을 위해서만 소비를 해왔기 때문 인 것 같다. 단순 전기면도기, 케이스 등 소유의 소비를 하려고 하는데서 오는 일종의 괴리감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 전 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 집으로 오 실 때마다 반찬이며, 간식이며 바리바리 싸오시는 엄마의 짐들을 옮기고 정리하던 중 닿고 낡아 버린 엄마의 가방이 눈에 밟혔다. 나의 돈은 엄마의 데일리 가방을 사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이 선물을 함에 있어서 엄마가 느낄 감정, 그리고 개인적인 뿌듯함을 느끼는 경험적 소비를 하여 좀 더 행복 가까운 소비를 하고 싶어 졌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써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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