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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Nov 10. 2021

도시에 출몰한 코뿔소와 호랑이

태몽으로 예지 하는 아이

 아내와 한 카페를 방문했다. 언제나 그랬듯 개방감이 느껴지는 창가에 앉았다. 이 카페의 뷰는 조금 특이했다. 창밖으로 한 고등학교의 넓은 운동장이 보였다. 주간이라 모두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건지 운동장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렇게 우린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차분히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차분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창밖엔 눈에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학교 담벼락 너머에 1.5톤 트럭만 한 코뿔소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이윽고 그 코뿔소는 담장을 부수고 운동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운동장을 헤집었던 건지 커다란 모래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 믿기 힘든 광경을 보기 위해 학교 입구 주변으로 행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학교의 조그만 창문틀 안엔 수업을 뒤로한 채 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한 학생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외쳤다.


"저.. 저기 봐! 호 호랑이다!!!"


 코뿔소가 등장했던 담벼락 너머에 이번엔 호랑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코뿔소를 구경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을 이루었다. 호랑이도 담장을 뛰어넘어 운동장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코뿔소와 한데 어우러져 운동장을 뛰어다니더니 축구 골대를 부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근처에 있는 동물원이라도 뚫린 걸까?


"와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다니, 와이프야, 이거 꿈만 같다"




 근데 꿈이었다.


   출근길에 꿈을 되새겨 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생생하면서도 특이한 꿈을 꾼 것 같았다. 회사에서 업무 중에도 코뿔소와 호랑이의 이미지가 계속 아른거렸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며 기억에서 잊힐 수많은 꿈 중에 하나겠지만 이건 워낙 꿈이 선명해서 길몽이건 흉몽이건 입 밖으로 꺼내보고 싶었다. 그리고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오늘의 꿈을 살며시 꺼내 보았다.


"헐~! 오빠 이거 태몽 아니야?"


"에이~ 설마..."


  머쓱한 표정을 지어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실 우리는 지난 1년 이상 아이를 갖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다. 생각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는 아이로 인해 시간과 돈도 돈이지만 아내가 몸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우리에게 혹여나 하는 마음 때문에 단순한 나의 꿈 하나에도 미련을 갖는 아내를 보니 꿈 이야기를 괜히  했나 싶었다. 태몽 따위의 미신을 믿지 않는 나지만 싱숭생숭한 마음에 자기 전 꿈 해몽에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느라 늦게 잠에 들었다.




 며칠 뒤 추석의 날이 밝았다. 아내와 차례를 지내러 새벽 일찍 시골에 내려갔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1시간 반 동안 우린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아직도 아이 소식이 없는 우리를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실망하실까 걱정했다. 물론 집안 어르신들이 내색을 하진 않지만 집안 장손의 며느리로서 아내가 가지는 심적 부담은 상당한 것 같았다. 명절을 다 보내고 처갓댁으로 가기 위해 할머니 집을 나서는 순간 아내가 할머니를 안으며 말했다.


"할머니 다음에 올 땐 꼭 좋은 소식 가지고 올게요!"


"그래?!  좋은 소식 들려주면 이 할미가 여한이 없이 좋지!!"


 그동안 내색하지 않던 할머니도 아내의 말에 본심이 나와 버린 듯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대하실까 봐 걱정이 태산이라던 녀석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오빠, 나를 이렇게 이뻐해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보니까 더더욱 욕심이 난다. 그리고 오빠의 꿈 때문에 이번인 뭔가 확신이 들어!"


꿈에 나온 코뿔소와 호랑이가 원망스러웠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일상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수화기 넘어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건지, 울기만 하고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오빠 두줄이 떴어"


 아내의 목소리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탕비실에서 전화를 받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무 일 없듯이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아내는 산부인과로 가서 혈액 및 소변 검사를 받고 최종 임신 확정을 받았다. 그 꿈을 꾼 지 약 한 달이 되는 시점이었다. 순간 무언지 모를 전율이 내 신경을 자극했다.


 이날은 야근을 하지 않고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아내를 만나면 뜨겁게 포옹을 해주어야 할지 달콤한 멘트를 해줘야 할지 프러포즈 때만큼 떨렸다. 이런 고민을 무색하게 할 만큼 생각보다 평온하고 침착했던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오는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해에 태어날 코뿔소 같은 (사내) 아이라 생각하며 내가 꾼 꿈이 정확한 태몽이 맞았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는 호랑이의 '호'와 코뿔소의 '코'를 따서 '호코'라는 태명을 지어주기로 했다.




 일주일 뒤, 아내는 초음파로 난황을 보러 산부인과에 갔다. 그래도 여전히 긴장감을 놓을 수 없기에 아내가 진료를 마치고 연락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내는


"오빠, 일단 태명부터 바꾸자"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피검사하러 들어간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아내가 이렇게 감질나게 함축적으로 말을 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나를 애타게 하는 걸까? 그리곤 내가 꿈을 잘 못 꾼 것 같다고 했다. 초음파를 확인하니 난황이 두 개가 보였다고 한다. 세포 분열이 일어난 일란성쌍둥이였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가 한 번에 두 명이 생긴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쌍둥이를 받아들이는데 며칠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후 초음파 사진을 보며 이 신기한 생명체 탄생의 순간을 마주해 신기하기도 하고 소중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했다. 우리는 코뿔소의 '코'와 호랑이의 '호'를 따서 '코코''호호'라는 태명으로 새로 지어 주었다.




 태몽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꿈이 우리 아이들이 점지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태몽이라는 의미 부여가  생명체의 탄생 설화 같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을 선사해준다는 점에선 이런 꿈을 꾸게 되어 정말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아내는 코뿔소와 호랑이의 난장판 덕택에 정말 개구쟁이 아이들이 나올  같다고 말한다. 개구쟁이든 사고뭉치든 그것이 대수랴? 그저 건강하게만 엄마 품에서 견뎌 나와 주면 좋겠다. 코코와 호호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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