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택 Mar 03. 2022

호캉스 대신 병캉스

세번째 입원

세 번째 입원 - 호캉스 대신 병캉스


 19주에 들어서는 금요일, 이날은 시로드카 수술은 한 아내의 퇴원 하루 전날이다. 마음 가볍게 회사를 출근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즈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진찰 결과 딱히 문제가 없어 퇴원 확정 소식을 알릴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오빠, 재수술해야 한데.. 1시간 내로 보호자 오래"


 너무 급한 마음에 팀장에게 보고도 없이 회사에서 나와 병원으로 갔다. 교수님은 자궁 경부를 묶은 부분 위가 공간이 더 벌어져 풀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시 묶는 재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청천벽력도 같은 소식에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본인 하나 희생하고자 하는 아내가 호기롭게 재수술한다고 하자


"재수술은 매우 힘든 고난도의 작업이고 성공도 장담 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동탄에 이 분야 최고 권위자분이 계시는데 이분에게 연락을 드려 응급으로 수술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셨다. 나름 대학 교수인데도 본인에게 맡기는 것보다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에게 안내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걸 고사하고 아이와 산모를 위해 해당 선택을 과감히 결정해주셨다.


우리에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닼 병원에서는 사설 구급차를 불러 주었고 그 사이 병실의 입원 짐을 다시 챙겼다. 그리고 교수님이 그동안의 진료 차트를 전달해주라며 건네주셨다. 구급차의 만렙 스킬과 다른 차량의 양보를 통해 동탄까지 3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도착했다.


 동탄 제일병원에 도착하니 기존의 병원과 다르게 북적이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긴급 후송 환자라 빠르게 수술 전 채혈, 엑스레이, 심전도 등 검사를 처리하고 그 해당 분야 권위자라는 박문일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더 늦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일단 잘 왔어, 우리 최선을 다해보자"


박문일 교수님은 자궁경관무력증 부분에 대해 세계적인 권위자다. 기존의 시로드카나 맥수술에서 더욱 견고하게 자궁을 묶는 더블맥 수술을 고안해 많은 생명을 지켜냈다. 이미 자궁경부 클리닉 카페를 운영하며 산모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에서도 똑같이 보호자 코로나 검사를 했고 짐들을 정리했다. 이미 유명한 교수 니이라 예약 손님도 많았고 우리처럼 타 지역 환자도 많은 듯했다. 이날은 아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나자 교수님이 이슬기 씨 남편하고 불렀다.


"수술은 잘 마쳤는데, 배 통증도 심하고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 그래도 이거 나라서 수술할 수 있는 거야. 이제 남은 건 산모가 잘 이겨 내는 것뿐이니 하늘에 맡겨 봅시다~"


연거푸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그리고 대기실에 앉아 있던 보호자들이 한 두 명씩 사라지더니 홀로 앉은 지 한참이 지나자 수술실에서 이슬기 님 보호자분 들아오라고 했다.


척추 마취를 통해 얼굴 빼고 온몸이 굳어 있는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서러움에 눈물을 흘렀다. 마취 중에도 교수님이 수술 잘 되었다 라는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 았다고 했다. 본인을 희생해서라도 아이들을 지켜 냈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다고 했다.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눈물을 보였다.


 회사에 전화를 했다. 다음 주 5일 동안 연차를 낸다고 했다. 때마침 회사 일도 바쁜 시기라 걱정이 되었지만 주변 동료들이 아이들보다 중요한 게 어딨냐 하며 부담감을 떨쳐 주었다.


 금요일 퇴근 복장 그대로 온 나는 최서 일주일은 동탄에 있어애 해서 토요일 근처 이마트를 방문해 속옷, 양말, 슬리퍼 그리고 간편한 옷들과 생필품을 샀다.


 이제는 씩씩 해진 아내와 나는 그렇게 동탄 병원에서 아이 20주를 맞이 하게 되었다. 설에 가기로 계획했던 제주도 태교여행은 비행기 렌터카 숙소 모든 것을 취소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두 번의 수술 입원 비용과 시설 구급차 비용으로 소진되었다.


 입원 5일차, 아내의 몸은 자궁 경부 강도는 90%가 넘었고 염증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 왔다. 교수님께서는 유토파 약을 줄여보고 특이 사항이 없으면 퇴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는 수요일 퇴원을 확정 짓고 용인에 있는 처남이 월차를 내고 우리를 태워 주기 위해 병원에 대기했다. 


조금은 불안 했던 점이 간밤에 유토파를 줄인 이후 약간의 통증이 있었던 슬기가 오전에 외래를 보자고 했다. 그리고 진료과장님이 외래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음.. 퇴원 못해"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자궁이 열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