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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l 06. 2024

을해년주-제왕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제왕 : 왕의 자리에 오르는 최고의 전성기로 표현이 되며 그 이후 ‘쇠’의 운행 단계에서 인생의 내리막을 걷게 됨.


중학생 때까지는 서러워도 여전히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참거나 울분을 억누르는데만 그쳤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무서워도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됐던 것은 아니다. 조금만 목소리가 커지면 나도 모르게 또 무서움이 엄습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장녀였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장면들은, 대체로 집안 식구들이 싸움이 일어나면 어머니와 동생은 눈물을 흘렸다.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등 다양한 감정들과 이유들이 공존했겠지만 그 당시, 당장에 눈에 보이는 행동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왜? 왜 여자는 힘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지? 왜 눈물을 흘려야만 상황이 종료되는 거지?


그때부터 나는 오기가 생기고 마음에서부터 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질 수 없다, 나도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동시에 외할머니의 말씀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명절에 찾아뵙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외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아빠 무서워하면 안 된디.
아빠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친하게 잘 지내야 된디.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할까. 그렇게 되는 날이 오긴 올까 싶으면서 동시에 억울하고 울분이 터지는 외할머니의 말씀.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왜 나만 그래야 하나 싶은 삐딱한 생각을 품게 만든, 잊을 수 없는 그런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내 뇌리에 깊이 박혀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한 마디가 되어버렸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여중, 여고를 다녔던 나는 그 시기에 마주할 남자라고는 거의 아버지뿐이었다. 그래서 다른 아버지나 남자들이 다 그러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서 쌓아온 데이터에 따르면, 아버지는 윽박지르듯 화를 내는 경우가 있으면서도 조곤조곤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따져서 말하며 어머니에게 말을 하시는 경우도 있었다는 거다. 나는 그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여러 데이터를 쌓아서 한꺼번에 쏟아내는 방식을, 그리고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 조곤조곤 대화로 풀어가려는 듯이 말할 것. 대신,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 그리고 냉정한 표정 유지할 것.


여기서 ‘절대로’에 힘을 준만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포인트가 가장 중요했다. 여자로서의 나약함을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여장부로서의 힘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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