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검 작가 Dec 10. 2020

다시 판매하기 시작한 양말세트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5> 사람의 인연은 어디까지인가

2016년 추석 때와 2017년 설날 때도 나는 어김없이 마트에서 양말 선물세트를 판매했었다. 대체 양말 하고는 무슨 인연이길래 이리도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인지. 덕분에 저번 연도에 팔았던 상품을, 해가 바뀐 후로도 같은 상품을 팔거나 혹은 비슷한 상품들로 진열해둔 상태라 판매하는 데 있어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사님, 혹시 이번에는 저 혼자 양말 판매하나요?"


마트에서는 보통,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에게 '여사님'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 때문에 나는 양말을 주로 맡고 계시는 분께 여사님이라 부르며 여쭤본 것이다.


"아니, 나중에 남자 한 명 오기로 했어. 아마 곧 올 거야."


아하... 남자분이라니.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여자라면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남자라는 사실에 괜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일주일 동안만 근무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이왕이면 같이 일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며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비스직이라 직접적으로 손님과 부딪히는 것도 모자라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과 부딪히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컸다. 또 친해지지 못하고 계속 어색한 관계로 몇 시간 동안 같이 근무하며 지내야 된다면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혼자 오만 가지 걱정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는 법. 그분이 출근할 시간이 되자 딱 시간 맞춰 출근하셨다. 나와는 나이 차가 얼마 안나는 것 같았다. 담당 여사님께서 소개해 주신 후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이거 참,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아주 잠시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여중, 여고를 졸업했으며 대학교는 일반 남녀공학에 입학했었다. 꼭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가족 중에서도 남자가 없었고(아버지 제외. 내가 맏딸이고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여중, 여고를 졸업한 터라 딱히 남자를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대학교를 다닐 때도 어색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아르바이트'라는 사회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남자분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인데 그야말로 어색하고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과연 이 분과 같이 어울려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이 분과 빠른 속도로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였고 의외로 장난스러운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하는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오빠가 날씬하니까 좀 들어가서 물건 좀 꺼내 주세요."


"아니야, 네가 더 날씬한 것 같으니까 네가 안에 들어가."


"에이, 아니라니까요? 오빠가 좀 들어가서 빼주세요."


"(뒷덜미를 살짝 잡으며) 어허- 어서어서 들어가."


"아, 아. 알겠어요, 알겠어요-"


그 당시 내가 양말 세트를 판매할 때는 앞 매대에 물건을 진열해두고 바로 뒤에 종류별로 재고를 쌓아두곤 했었는데, 그 뒤편으로 들어가는 공간이 매우 좁았다. 한 사람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공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공간을, 서로 들어가서 물건 좀 빼 달라며 장난스레 투닥거릴 정도로 우리는 친해지게 되었고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게 됐다.


"이번 주말만 지나고 나면 내 여자 친구가 바로 앞 샴푸 판매 알바생으로 들어올 거야."


네? 이건 또 무슨 말이죠? 커플이 나란히 서로 바라보며 일을 하게 된다니. 이런 경우가 의외로 많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처음 듣는 말이었고 처음 겪게 될 일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내게도 연인이 있었다면, 연인과 함께 마주 보며 일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혼자 상상해보기도 했었다. 좋을지, 나쁠지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분의 말대로 언니는 주말이 지나자 정말 딱 나타났고 또 한 번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오빠 소개로 나는 그 언니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런 식으로도 인연이 맺어질 수 있다니. 그때 그 이후부터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신기함을 종종 느끼곤 했던 것 같다.




이들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팀장'이라는 직책을 단 사람이었다. 사실, 그전에도 다른 물건을 팔 때면 한 번씩 오다가다 마주치곤 했었는데 그때는 그뿐이었다. 그저 인사만 하고 지나칠 뿐이었다. 그랬던 그분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단순하고 사소한 일이지만 내 두 눈으로는 마냥 좋은 시선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사건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고 있던 오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서 매대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손님을 구경하고 있을 때 팀장이란 분이 내게로 다가오셨다. 그래서 내가 인사를 하려는 찰나, 뜬금없이 그분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 가만히 두면 먼지도 쌓이고 하니까 한 번씩 털어도 주고. 먼지떨이 없어? 먼지떨이 없으면 옆에 빌려서 한 번씩 이렇게 툭툭 털어주고, 어? 진열도 옆이랑 딱딱 맞춰서 보기 좋게 진열해놔요."


"아... 알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뭐지 싶었지만 굳이 토 달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알겠다는 대답으로 마무리 짓기 바빴다. 마음이 조금 언짢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어하는 마음으로 먼지를 마저 털었다.


그렇게 먼지를 다 털고 막 허리를 폈는데, 내 눈에 이상한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내게 먼지를 털라고 했던 팀장님은 다른 곳으로 가서 여직원 분을 대신하여 무언가를 벽에 달아주시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속으로 삐딱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친절을 베푸는 것도 사람을 가려가며 베푸나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생활 쪽(휴지 및 생리대 판매하는 구역)을 담당하시는 몇몇 여사님들에게 둘러싸여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보게 됐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니꼽게 보이던지. 이런 생각하면 안 돼, 이런 마음 품으면 안 돼 하면서 속으로 슬슬 올라오려는 열을 삭히려고 애썼으나 그게 참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람을 가려가며 상대하고 싶을까, 혹은 저분은 제 할 일이 없으신 걸까 하며 불편한 마음을 내뿜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나 불편한 감정을 가져봐야 나 자신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러한 것들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했다. 저분 또한 자식이 있고 가정을 이루고 계실 텐데, 꼭 이렇게 상대하고 또 저런 모습을 보이고 싶으실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삐딱한 시선은, 그분을 통해 더욱 사회를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원래 나란 사람이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향이 없지 않아 있는 편인데, 한 사람을 통해서 '사회'라는 곳을 더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분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이후의 다양한 에피소드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등장하겠지만 이 분보다도 훨씬 더 강하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만큼 내게 있어서는 좋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웬만하면 내 삶에 있어서 적을 두지 않고자 하는 게 나의 신념이자 목표이거늘, 때때로 이런 나의 목표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때면 많이 당황하곤 한다. 정말이지, 나와 인연이 닿아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이왕이면 잘 지내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힘들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며 아마도 살아있는 한 계속 겪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회.


아름답지 않은 사회이기에 우리는 이 속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엿보려 하고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어떻게든 이기고자 목소리를 높이려 하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이 속에서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려고 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일이든 관계든 무엇이든 개선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수영복 판매할 때 만난 우연의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