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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Oct 28. 2020

수영복 판매할 때 만난 우연의 만남

<4> 수영복 판매가 맺어준 잠깐의 인연

같은 해(2016년) 6월, 슬슬 여름이라는 계절이 눈을 뜰 시기. 어김없이 마트에서 이 시즌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수영복 행사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정 브랜드들의 가게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춘 채 넓은 마트 광장에 온통 수영복으로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흔히 '대학생'이라고 일컬어지는 학생은, 중·고등학생이라는 같은 학생 신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그만한 기회와 호사를 누린답시고 중학생, 고등학생에 비해서 더 빨리 방학을 맞이하곤 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갖추고 있었던 내겐, 이것이야말로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게다가 방학이 두 달이라니.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무엇을 배우거나 혹은 여행을 떠나거나 아니면 용돈벌이에 좀 더 신경을 쓰거나.


이중에서도 내가 택한 것은 '용돈벌이'였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갖춘 만큼, 또 '성인'이라는 타이틀까지도 함께 단 만큼, '자유'라는 이름을 가진 그 무언가를 누리려면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내 앞가림 정도는 하자 싶어서 또다시 마트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 어차피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단기 알바이긴 했지만.




내게는 같은 핏줄을 가진 이모 말고도 또 다른, 그러니까 같은 피가 섞이지 않은, 그렇지만 똑같이 '이모'라고 부르는 이모가 두 사람이 있다. 그 두 분은 자매이며 A이모와 B이모라고 임시로 부르도록 하겠다.


이 분들은 나의 어머니의 동생이신, 진짜 이모의 친구 분들이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고 자라면서 늘 함께 했고 자주 봐왔던 이모들이기도 했다. 그만큼 A이모와 B이모는 여전히 나와 내 동생을 볼 때면 종종 반겨주시곤 하신다.


뜬금없지만 이 이야기를 잠시 꺼내는 이유는, 실은 수영복 판매를 할 때는 나만 일했던 것이 아니라 A이모와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잘 알고 지낸 이모와 같이 일해서인지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원래 A이모가 유쾌한 편이라 더욱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수영복 판매할 때도 어김없이 조금 독특한 손님들을 만날 때면 더더욱 따분할 일이 없었다. 마트라는 공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자리고 공간이었다.


수영복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 떠오르는, 조금은 독특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손님은 딱 두 분이다. 한 분은 혼자 끊임없이 혼잣말하시는 어떤 할머니이셨고 다른 한 분은 그전에 내가 다른 물건을 판매했을 때도 나를 한 번 보셨던 분이셨다.


"손님- 수영복 한 번 구경해보시고 가세요-"


늘 그렇듯 정해진 멘트를 날린 나. 일반적인 나의 멘트를 듣고 가던 길 잠시 멈춰 서시며 조금 놀란 듯하면서 동시에 약간은 반가운 듯한 목소리로 답변해주셨던 그 손님.


"어머! 아가씨 그때 그... 다른 물건 팔고 있었던 분 아니에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솔직하게 맞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그때 정확히 어떤 물건을 팔고 있을 때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물건을 팔았든 간에 그때는 그 물건이 좋다며 구경하고 가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또 다른 물건인, 수영복을 판매하면서 이 상품 괜찮으니 한 번 보고 가시라고 홍보하고 있는 중인데, 하필 동일 인물인 나를 귀신같이 알아보시다니. 한편으로는 어떻게 아셨지? 싶었다. 나란 사람은 워낙 평범하고 기억에서도 잘 잊힐 법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오로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여기서 내가 선택한 대답은,


"아, 예... 맞아요."


멋쩍은 듯 웃으며 솔직하게 대답해버린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해봤자 이미 손님은 눈치채신 것 같은데 굳이 숨길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냥 솔직하게 대답해드렸다.


한편으로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고 말 인연일 뿐이고 그만큼 순식간에 잊기도 쉬울 텐데, 이렇게 잊지 않으시고 나를 생각해주시다니. 이래서 사람 인생이란 게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그 손님을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무엇보다도 그 이후로는 그 손님을 영영 보지 못해서 지금은 아예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제삼자가 보면 다소 엉뚱하다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번에 이 자리를 빌려 그분께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잠시라도 누군가가 나를 좋은 의미로 기억해주고 알아봐 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고 기분 좋은 일이란 걸 깨닫게 해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한편, 혼잣말하시는 할머니에 대해서는 거의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다만, 큰 피해를 주신 건 없었지만 두어 번 정도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이 보일 때면 약간은 무섭다는 생각과 조금은 두려운 기분이 들었던, 그 순간의 내 생각과 기분만이 흐릿하게 느껴지고 떠오를 뿐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내게는 큰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단순히 용돈벌이를 위해, 그러니까 '돈'이라는 것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라는 것에 뛰어들긴 했지만 그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기분 나쁘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유쾌했던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앞으로 차차, 다른 일들을 하면서 겪어왔던 경험들을 조금씩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밝히겠지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 속 사람들만 떠올려봐도 내가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오긴 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브런치를 통해, 지금껏 겪어왔던 일들을 덤덤하게 풀어 쓸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만약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지 않고 또 작가가 되지 않았으면 아마 영영 세상 밖으로 꺼내놓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만 남아있을 게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도 조금씩, 그렇게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이야기들을 어디에서도 풀어내지 않았을 것이고 그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아마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하지만, 혼자서만 꽁꽁 움켜쥐고 있었던 과거의 내 이야기들을, 브런치는 놓치지 않고 내게 기회의 손길을 건네주었다. 나만의 이야기를 그대로 흘러 보내지 말고 그 기억들을 붙잡아두는 게 어떻겠냐고, 또 남들에게 너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어떻겠냐고. 막연해 보이는 듯 하지만 내가 '작가'라는 꿈을 꾸고 있는 너를 위해, 이정표가 되어주겠다며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 역시 이때다 싶어 그 손을 덥석 움켜잡은 것이다.


조금은 더디 가더라도 나는 끝까지 이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색다른 만남 또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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