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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Feb 15. 2021

언제든 받아도 의미 있는 선물, 책

<6> 유종의 미를 풋풋하게 이룬 마지막 마트 알바

2017년 1월 설날에 양말세트 행사 상품 판매를 무사히 끝마친 후 잠시 쉴까 싶었지만 곧 또 다른 제의가 들어왔다. 단 이틀 동안만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마트 내 작은 서점 쪽이었다.


서점이라고 칭하기엔 매우 협소한, 그저 또 하나의 코너일 뿐인 곳이었는데 평소 책을 좋아했던 나는 큰 고민 없이 일을 하겠다고 했다. 원래 도서 코너를 맡고 있던 여사님이 따로 계셨는데 이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급하게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바로 내가 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이틀만 일을 하면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들리는 코너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여유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마트마다 진열된 책이 다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는 초등학교 저·고학년 학생들의 문제집과 만화책 및 알록달록한 그림책, 그리고 성인이 볼만한 몇 안 되는 책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내가 일한 서적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중학생 정도까지의 문제집도 있었지만 대개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문제집이 주를 이루었다.


진열되어있는 책들이 이렇다 보니 몇몇 학부모님들께서는 내가 보일 때마다 물어보곤 하셨다.


"혹시 중학생용 문제집은 없을까요?"


"여기 진열된 책들이 전부인가요? 중·고등학생용 문제집은 따로 없나요?"


고객님들이 질문할 때마다 나는 서적 담당 여사님의 말씀이 떠오르곤 했다. 책 같은 경우에는 따로 후방에 갈 필요 없다고, 매장에 진열된 책이 전부이니까 고객님들이 뭐라고 물어보셔도 여기 있는 책들이 전부라고 말씀드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사님께서 이야기해주신 대로 고객님들께 솔직하게 대답해드렸다. 죄송하지만 여기 있는 책들이 전부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문제집을 왜 마트에서 찾으실까 하고 말이다. 좀 더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떠한 책이든 서점에서 구입하는 게 일상이었고 익숙한 일이었다. 단순히 마트 내부에 있는, 작은 서적 코너가 아닌 누구나 알 법한 대형 서점이나 혹은 동네 작은 서점에서라도 책을 사는 게 당연한 일인 듯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러니까 마트에서 일할 때는 의외로 몇몇 부모님들께서 마트에서도 문제집을 찾으실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너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서적 코너에서 일할 때는,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근무했던 탓도 있었고 손님 자체도 많이 없었던 터라 책 한 권 판매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그 시간 동안 마냥 서있기만 하기에는 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아서 이 책 기웃, 저 책 기웃거리며 책 구경하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책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책을 발견하게 됐다. 책 제목부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유명한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라니. 안 읽어볼 수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에 그 자리에서 읽어 내려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이틀 간의 서점 아르바이트를 끝낸 후 잠시 쉬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창 근무하신다고 바쁘실 텐데 그 와중에 내게 전화를 하신 거다. 그러고 내게 하시는 말씀이, 서점 담당 여사님께서 내게 고마움의 표시로 책 한 권 사주고 싶다고, 그러니 어떤 책을 원하는지 이야기해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는 그저 대신해서 일을 하고 그만큼이라도 돈을 벌어갈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는데 여기서 책 한 권까지 선물해주신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렇지만 여사님께서는 이미 마음을 굳히신 건지, 내가 고민하는 그 기간을 조용히 기다려주셨다. 그 기다림을 오래 끌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일하면서 봐 둔 책이 한 권 있었기 때문에 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내릴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책이 있는데 그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어."


나는 전화로 엄마에게 의견을 전했다. 그와 동시에 설레는 감정이 몰려왔다. 읽어보고 싶었던 새 책을 내 손에 얻는 그 느낌이란. 이는 직접 책을 구입해보거나 혹은 선물 받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때 역시 책을 선물 받았을 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감사함, 설렘, 죄송함 그리고 꼭 정독하겠다는 마음 가짐까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는, 예쁜 작은 종이 가방에 담긴 책 한 권을 내게 건네주셨다. 여사님이 고마워하더라고 말을 전하시면서.


이 날 이후로는 언제 책을 선물 받아봤나 하고 되새겨봐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책은 내게 있어서 아주 뜻깊은 책이 되었다. 


미래의 내가 계속 작가를 꿈꾸고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과거의 나는, 그렇게 선택한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은 후 지금까지도 책장 한쪽에 고이 간직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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