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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26. 2023

뉴욕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찾을 확률



 7월 중순 친한 언니와 3박 4일 뉴욕여행을 갔다. 나는 이미 3번이나 다녀온 뉴욕이기에(그것도 한 번은 3주짜리 여행이었다) JFK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맨해튼까지 라이드앱을 타는 경우 드는 $100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날 마침 타야 하는 노선이 운행을 하지 않는 바람에 이리저리 돌아 2시간 만에 지하철역을 나올 수 있었다. 그 사건은 역에서 숙소까지 약 10분을 걷는 중에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내 짐가방을 언니의 캐리어 위에 고정시키고 언니의 짐가방을 내가 매고 있었다. 구글맵에서 길을 확인한 후 잠깐 핸드폰을 가방 주머니에 넣었다. 한 손으로 잡기도 힘든 핸드폰을 들고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불편해서였다. 길을 건너자마자 언니의 가방 주머니에서 다시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주머니라고 생각했던 공간의 바닥이 뚫려있었다. 주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핸드폰이 없었다. 분명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횡단보도가 바뀌면서 신호등 소리가 나고 멈춰있다가 분주하게 이동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떨어지는 소리를 놓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바로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가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핸드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지 약 1분 만에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지하철 입구로 다시 돌아가 횡단보도까지의 길을 몇 번이고 다시 왔다 갔다 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전화를 걸어볼 수도 없었다. 현지에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심을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내 핸드폰은 현재 와이파이만 잡을 수 있는 공기계이기 때문이다. 주위에는 마트에서 쓰는 카트를 끌며 돌아다니는 노숙자들만 4명이 있었다. 소매치기도 흔하게 일어나는 뉴욕의 특성상 누군가 핸드폰을 주웠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팔았을 것이 분명하다. 현실감 없게도 여행 첫날, 작년에 산 최신형 아이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디지털 치매라고 하던가.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증상을 부르는 말이. 다른 사람의 기기로는 메신저, 이메일 어느 것도 로그인할 수 없었다. 보안 절차로 내 애플 기기 중의 하나로 인증코드를 보내준다고 하는데 핸드폰을 제외한 모든 기기는 집에 고이 두고 왔기 때문이다.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의 번호는 당연히 모른다. 인증 코드를 받기 위해 집에 있는 룸메이트에게 연락해보려 해도 룸메이트의 번호도 모른다. 여행 일정도 핸드폰에 적어 두었고, 갈 식당의 이름들도 구글맵에 저장해 두었다. 핸드폰이 없이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언제 핸드폰을 잃어버린 건지 그 순간을 계속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하면서 내 손이 가방의 옆주머니를 향했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택시비 $100 아끼자고 $1000이 넘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건가 자책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10대 시절 택시에 두고 내리고, 지하철 선로에 빠트리던 경험들을 거름 삼아 이제는 이동시 핸드폰이 있는지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왜 내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을까. 내 가방이었다면 제대로 주머니에 넣었을 텐데.  




 그날 저녁 애플 스토어에 가서 핸드폰을 샀다. 어차피 새로 살 핸드폰, 빨리 있어야 남은 일정을 망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클라우드에 있는 데이터를 복구해 오는데도 인증번호가 필요했다. 같이 간 언니의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계정을 타고 타고 룸메이트에게 DM을 보냈다. 룸메이트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인증번호를 받았다.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는 일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나의 아이폰 찾기 앱에 들어갔는데 핸드폰의 위치가 업데이트된 것이었다. 미드타운에서 잃어버린 핸드폰이 5분 전 다운타운에 있다고 나왔다. 주은 사람이 이동을 한 건가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위치 변동이 없었다. 핸드폰이 위치해 있다는 주소를 구글맵에 검색해 보니 여러 개의 건물에 하나의 이름이 검색되었다. NYPD Headquarter.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찰서 본부에 분신물을 맡아주는 부서가 있었나. 호텔 전화로 경찰서에 전화를 해보니 전화상으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핸드폰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홀로 아침 일찍 뉴욕 경찰서 본부로 향했다. 입구를 찾지 못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겨우 방문자 등록 센터에 도착했다.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경찰관이 무뚝뚝한 얼굴로 왜 이곳에 왔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Find my iphone이 내 핸드폰이 5분 전에도 여기 있다고 나온다고 대답했다. 경찰관은 경찰서로부터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냐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여기서 내 핸드폰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거라고. 특히나 앱만 믿고 여기 왔다는 게 무모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서 확인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결국 그는 건너편 건물 지하로 나를 안내해 줬다.





지하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은 방 중간을 분리하고 있는 창구와 직원들을 보호하고 있는 플라스틱 판이었다. 창구 뒤로는 천장까지 닿은 회색 서랍장들이 있었다. 딱 드라마에 나오는 자료 보관실 같았다. 건너편 창구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핸드폰을 찾으러 왔다고 이야기했다. 직원은 소리를 내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내 핸드폰은 인터넷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소리 내기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분실 시 연락처를 업데이트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안다고 했다. 하지만 직원은 그것만으로는 내 핸드폰이 어떤 서랍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핸드폰만 모아놓는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며, 본인들이 저 서랍들을 다 뒤질 수 없기 때문에 설사 이 방에 내 핸드폰이 있다고 해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대답이었다. 직원이 혹시 핸드폰의 외관에 특징이 있는지 물어봤다. 나는 투명 케이스 안에 강아지 얼굴 스티커가 있다고 답했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직원이 I have it here!라고 소리쳤다. 핸드폰을 주워서 이곳에 맡긴 경찰관이 특징에 정확하게 투명 케이스에 dog face sticker가 붙어있다고 적어 놓은 것이다. 이때부터 심장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을 가능성이 있나?




 잠시 후 직원이 한 서랍에서 증거 보관용처럼 생긴 투명한 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그 안에 정말 내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너무 놀라워서 아무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직원은 일단 이 핸드폰이 내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칼로 봉투 하단에 1cm 정도의 구멍을 뚫어 내 핸드폰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핸드폰은 방전된 상태였다. 전원이 켜지고 잠금화면이 나왔다. 그녀는 나에게 잠금 화면 비밀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나의 비밀번호를 말해주었다. 잠금 화면이 풀렸다. 그녀는 축하한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분실된 핸드폰이 있는지 아냐고. 그중에서 찾아가는 케이스는 정말 없다고 했다. 봉투에서 나온 핸드폰이 창구 건너편 나의 손에 잡혔다. 핸드폰을 찾았다. 데이터도, 배터리도 없던 핸드폰이 어떻게 내가 경찰서에 있는 그 순간까지도 GPS를 잡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언니는 나보고 복권을 사라고 했다. 엄청난 운이라고. 한국에서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 뉴욕에서 일어났다. 건물을 나오는 길에 다시 소지품 검사실로 들어가서 못 찾을 거라고 장담하던 직원들에게 2개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찾았다고 소리치고 싶은 생각이 차올랐지만 줄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곧장 호텔로 향했다. 새로 산 핸드폰은 애플 스토어에 가서 환불을 받았다. 미국 애플은 새로 산 핸드폰을 14일 안에 반납할 수 있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금전적 손해는 하나도 본 것이 없었다. 믿고 싶지 않은 일들만 일어나는 시기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작가의 이전글 SAMTOH 3월호에 글이 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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