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샘터가 익숙한 저는 90년대생입니다.
지난 1월, 브런치를 통해 샘터사로부터 작업 요청을 받았다. <샘터>의 한 코너인 '지구별 우체통'에 내가 직접 경험한 캐나다의 삶, 문화, 특징이 녹여진 생활 에세이를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샘터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내가 기억하는 그 월간 샘터인가 검색을 해보았다. 맞았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 있었던 그 교양 잡지. 우리 엄마도 보면서 자란 오래된 잡지가 아직까지 나오고 있었다. 1월호는 SAMTOH라는 새 영문 글씨에 예쁜 일러스트 표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e-book으로도 나와 있어 캐나다에 있는 나도 결제해서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생활지가 반갑기도 하고 원래 에세이를 좋아하기도 해서 아껴두고 주말 내내 읽었다. 신선하고 젊은 이미지로 새 브랜딩을 해 독자층을 넓히고 시대에 맞춰 변화한 샘터의 모습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물론 내가 한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 보던 잡지는 왠지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게 하는 느낌이 있다. 매달 빠트리지 않고 사모았던 Mrk와 Wow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답장을 쓰고 담당자님과 여러 메일을 주고받았다. 첫 번째 원고가 주제 문제로 까이고 두 번째 원고를 바로 며칠 뒤에 보내는 일이 있었다. 분량과 기한이 정해진 상태에서 글을 쓰니 초안, 수정 모든 과정이 순조롭고 재미있었다. 더구나 요새 혼자서는 글을 잘 쓰지 않고 있던 차라 나를 푸시할 수 있는 상황이 반갑기도 했다. 두 번째 원고는 캐나다의 야생동물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표 문화=다문화 인 나라에 대한 글을 쓰려니 뭔가 독창성이 없는 느낌이라 고민을 많이 하다 정한 주제다. 여러 번 수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끊기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다섯 문단을 써서 제출을 했는데, 출간된 글을 보니 내용의 순서나 문체가 많이 바뀌어 있어 내 글 같은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원고를 여기 남긴다. 혹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출간된 3월호는 한국집으로 한 권을 보내주셨다. 엄마는 배송 연락이 오기도 전에 굳이 서점에 가셔서 진열된 책을 찾아 인증샷을 보내주셨다. 좋은 경험이었다.
야생동물과 살아가는 문화를 배우는 캐나다
연휴를 맞아 친구들과 캠핑을 간 날이었다.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입구가 이상하게 생긴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손을 입구 안으로 깊숙이 넣어 숨겨져 있는 레버를 밀어 야만 위로 열리는 구조라 사용 방법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여기 쓰레기통 여는 방법이 특이하네.” 친구에게 얘기하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곰이 못 열게 하려고 그래.” 맞다. 여기는 살면서 한 번쯤은 곰을 만날 수 있다는 캐나다였다.
근교에서만 곰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곰이 한낮에 도심 속 공원이나 가정집 뒷마당에 출몰했다는 소식은 뉴스에 빈번하게 나온다. 집에 곰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기관에 신고하기보다 곰이 떠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편이다. 혹시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간주돼 사살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는 이 땅은 곰들의 보금자리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곰을 만났을 때 대처 방법과 주의 사항에 대해 교육한다. 곰이 멀리 있을 때, 가까이에 있을 때, 새끼와 함께 있어 공격성을 띠고 있을 때, 공격적이지 않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다치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친다. 호신용품으로 팔리는 곰 퇴치 스프레이는 캡사이신 성분이라 곰이 놀라서 달아나게 할 뿐 곰의 건강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곰뿐만 아니라 코요테, 쿠거, 늑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캐나다에는 밤에는 입장이 되지 않는 공원들이 많이 있다. 견주들은 반려견을 산책시키다 마주칠 수 있는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반려견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무서운 야생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토끼, 청설모, 거위, 두더지같이 귀여운 동물과 덩치는 크지만 성격이 온순한 산양, 칠면조, 바다사자도 있다. 이 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은 거위다. 5년 전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한 줄로 서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거위 가족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물가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거위들이 도심 한가운데서 그것도 새끼들과 함께 있다니. 양쪽에서 오던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경적 소리 하나 없이 거위 가족이 길을 다 건너가는 것을 기다려주는 것에도 놀랐다. 이것이 캐나다 구스의 위엄인가 생각했지만 사실 여기저기 똥을 싸놓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래도 보호는 똑같이 이루어진다.
커뮤니티에는 야생동물과 친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올라온다. 먹을 것을 찾아 주택가 쓰레기통을 모조리 파헤치는 덕분에 Trash Panda라는 별명이 더 알려진 라쿤이 사람의 머리를 만져주고 애정을 표현하거나, 산에 사는 다람쥐가 매일 집 앞에 찾아와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요청하는 동영상을 보면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면 어떤 동물과의 관계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항상 주의해야 하는 점은 야생동물에게 절대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야생동물을 만지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으며 위반 시 우리나라 돈으로 최소 50만 원에서 최대 50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대로 두고 놔둬야 이 공존을 지킬 수 있다. 지금까지 야생동물에 의한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률을 발 빠르게 개정하고 피해 예방과 처벌이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기에 사람들이 이들을 위협적인 존재로만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체험이 있다. 바로 늑대 울음을 흉내 내고 야생 늑대가 화답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단풍으로 유명한 알곤퀸 주립 공원은 늑대가 가장 많이 우는 8월에 여름 캠프를 연다. 참가자들은 세미나실에 모여 늑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늑대 울타리가 있는 곳까지 산책을 한 뒤, 그곳에서 공원 소속 연구원이 늑대 울음으로 늑대를 부르는 모습을 구경한다. 이 연구원들은 늑대 울음소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도 해석할 수 있어 늑대 통역사로 불린다고 한다. 야생동물을 연구하고 보호하면서도,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이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까.
HANA 광고회사 때려치우고 이민 간 그 선배, 외국으로 도피한 K-장녀가 제가 되었습니다. 2016년부터 brunch에서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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