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A Jan 17. 2024

결혼 2

결국 이렇게 됐구나.






 태오는 가만히 앉아 세연이 아닌 가은과의 미래를 그려본다. 가은과 결혼을 한다면 모든 것이 수월할 것이다. 둘의 연봉으로 대출을 받으면 집을 사기 위해 서울권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주는 결혼 보조금도 두 배 인 데다가, 육아 휴직도 번갈아 가며 쓸 수 있다. 게다가 아이도 급하지 않으니 3년 정도는 신혼을 즐기며 같이 해외여행을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깊어지는 망상을 멈추기 위해 태오는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은과의 관계가 바람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절대 안 될 일이다. 명문대를 나와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완벽한 인생에서 조강지처를 버린 아버지는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은 수치스러운 존재였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태오의 오점이었고, 남자 주인공이 바람을 피우는 드라마는 아무리 유행해도 아예 경멸하며 보지도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한참은 부족한 진혁이 은근슬쩍 옆자리에 앉은 가은에게 추근덕 될 때마다 피가 머리끝까지 쏠리는 느낌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눈은 경직되어 있는 가은을 볼 때마다, 자신이 그녀의 보호막이 될 수 없는 사실에 화가 났다. 태오에게 향하는 가은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마치 그녀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옥상에 올라온 진혁이 말을 건넸다.


“태오씨, 결혼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어?”


“네, 여자친구 쪽에서 워낙 추진력이 좋아서요.”


“잘됐네. 청첩장 나오면 꼭 줘. 가은씨랑 같이 갈게”



그날은 태오의 택시도 가공을 하는 날이었다. 세연이 건네주는 대로 하나씩 옷을 입은 태오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세연이 놀라서 물었다.  



“그렇게 별로야? 다른 거 입어볼래?”


“아니 그냥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게 좀 어색해서.”


“나도 그래! 너무 떨리지?”


“세연아, 우리 결혼.. 조금 미루는 게 어때?”  



세연의 얼굴이 단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표정이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무심결에 내뱉어진 자신의 진심에 더 놀랐다. 항상 따뜻하고 밝은 세연이 그 순간은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바람직한 결혼 생활을 지켜보지 못하고 자라서 결혼 자체가 조금 불안해. 내가 좋은 가장이자 아빠가 될 준비가 된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내가 그거 모르고 결혼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그런 핑계를 대? 완전히 준비된 상태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미안해."


화를 삭이려고 입술을 꾹 다물고 한참 말이 없던 세연은 이내 핸드폰과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버렸다. 태오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며 붙잡아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세연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태오는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다. 터널 입구에서부터 들고 왔던 손전등을 믿고 불안하더라도 터널 끝까지 향할 것인지, 새로 설치된 전등을 켜서 남은 길을 편하게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세연과, 전화를 받으며 키보드를 바쁘게 두드리는 가은을 번갈아 보았다. 손에 자꾸 고이는 땀을 닦기 위해 바지를 여러 번 문질렀다. 이윽고 핸드폰을 열어 세연에게 문자를 남겼다. ‘만나서 꼭 할 말이 있어.’  








 태오는 왼발, 오른발을 스무 번쯤 반복해 걷는다. 버진로드 끝에 도착해 숨을 한번 고르고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춘다. 뒤를 돌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하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신다. 진혁의 소개로 섭외한 사회자가 큰 소리로 신부 입장을 외친다. 이윽고 태오가 들어온 문이 다시 한번 열린다. 저 멀리서 가은의 얼굴이 보인다. 평소보다 진한 메이크업이 뚜렷한 이목구비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태오는 오늘 그녀가 지금껏 본 그 어떤 모습보다도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줍게 걸어오는 세연에게 팔을 내어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