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민을 준비하며 #1
정오가 돼서야 일어난 토요일 오후, 아침을 먹고 티를 마시면서 책을 보다가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한참 동안 맞다가 문득 이제 정말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최근 몇 년이었다. 8년 전, 도망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으면서 좀 더 버텨볼걸 그랬나. 후회 아닌 후회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일일이 재보면서 ‘그래,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분명 우울증, 공황장애, 알코올중독 중의 하나를 겪고 있었을 거야’라며 자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장녀의 책임감을 내려놓고 부모 형제 없는 고아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살던 날들이 처음에는 좋았다. 새로운 언어를 쓰고, 그 언어가 만드는 성격을 받아들이고, 낯선 환경에서 혼자 헤쳐나가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나에게 맞다고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결혼이 아닌 이상 독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집이 서울에 있는 이상, 많지도 않은 월급을 다 쓰는 자취라는 결정은 하기 힘들었을 테니. 28살의 나는 엄마의 간섭이 버거웠고, 미래가 너무 불안했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안정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상처만 받았고, 야근과 초과 업무를 당연시 생각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싫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생각 한 번 해 보지 않은 워킹 홀리데이를 기회로 캐나다 이민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구의 결정이 더 맞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이미 정착해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도 한다. 어떻게든 캐나다에서 평생 살기 위해서 날씨가 극도로 추운 지방에 가서 일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환경이 더 좋은 미국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결정했다. 8년 동안 만들어진 새로운 내가, 26년 축적해 온 원래의 나를 무너뜨리는 게 제일 힘들었다. 나는 외국인을 만나고,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현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한국 콘텐츠가 좋다. 영화도 예능도 한국 것만 보고, 감정을 위로받고 싶을 때 읽는 책은 한국 책이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이 나타나고(특히 한자), 말하고 싶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말을 잘하는 과거의 나를 놓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어로 말할 때의 내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말할 때 보다 더 예쁜 목소리가 나오고, 자유로운 모국어의 활용으로 더 다양한 표현력이 생긴다. 원래의 나는 이런 사람인데 이민 후 한정된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이, 원래의 삶을 버리고 여행의 연장인 것처럼 사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나는 캐나다의 어떤 정치적 상황에도 관심이 없고,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얼마로 올라가던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작년 말 한국에서 일어났던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유튜브 뉴스를 봤고, 분노했으며, 행동할 수 없음에 좌절했다. 정말 극단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만약 북한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엄마와 동생만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으며, 나이가 들어 생을 마감할 때가 됐을 때 문화도 환경도 이국적인 이곳에 묻히고 싶지 않다.
당연히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어떻게 다시 한국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혹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적응할 수 있을지, 8년 동안 다 잃어버려서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34살이 되어버린 이제는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다르니 말이다.
-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