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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Jul 27. 2020

너를 위한 거짓말은 없다

선의의 거짓말은 누구를 위한 선의인가


나는 제법 거짓말을 잘한다.

면대면으로 대화하지 않는 한은.
대질심문에서 가장 취약한 것은 눈빛이다. 말이 쓸데없이 많아지거나 설명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일단은 눈빛이 매우 심하게 흔들려 눈을 마주 보며 거짓말을 하면 티가 너무 난다는 것이 가족과 측근들의 증언이다.

심지어 강력한 증거 제시를 요구하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목소리마저 커진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전형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특성을 스스로 알고 나선 부모님이나 남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일단은 외출을 하거나 최대한 얼굴 마주할 일을 피하고 통화나 메시지로 하곤 했다. 대면보다는 통화, 통화보다는 메시지. 이렇게 들킬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외박을 하기로 하고 외출을 하면서도 일단은 집을 나가 전화로 도서관을 가서 중간고사 준비로 밤을 새우고 오겠다고 허락을 받는 식이다. 음주기준이 조금 약했던 과거엔 한두 잔 정도는 운전을 해서 돌아오곤 했는데 음주운전 자체 기준이 높았던 남편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고, 전화 온 줄 몰랐네 대리 불러 가고 있어 라고 뒤늦게 문자를 보내는 식이었다.

귀가 후엔 세부사항 질문이 더해질세라 취한 척 바로 자리를 피한다던지, 나름의 나만의 거짓말 매뉴얼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매뉴얼은 시전이 많을수록 수가 간파당하기 마련이다. 오빠는 늘 내가 며칠식 자리를 피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면, 나를 상당히 수상하게 여겨 면담을 신청했고, 남편은 나의 “대리 불렀어”라는 문자엔 전화해라는 답을 하거나 도착 예정시간에 주차장에 마중 나오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요즘은 메세지로 거짓말하는 것도 이상하리만치 힘들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피해가도 거짓말이라는 게 대부분 걸리기 마련이었는데 신기하게 스스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면죄부를 주었던 거짓말들은 걸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나를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너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강력한 마법과도 같아서 눈을 마주 보는 것에 두려움도, 목소리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과 선의의 거짓말의 경계

살아오면서 의외로 스스로 선의라고 칭하는 거짓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넘쳐나고 있다. 성의껏 고른 친구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든다고 한다거나, 연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가본 곳을 처음이라고 한다거나, 선의라고 하는 거짓말은 생각보다 일상 곳곳에 의식하지도 못한 채 스며들어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남자 친구를 두고 어학연수에서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남자 친구에게 고백해서 위기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걸리지 않았지만 솔직하게 다 얘기를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남들은 걸려도 발뺌을 하는 상황에서 걸리지 않아도 고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상대를 정말 위하는 행동이었을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솔직함과 선의라고 하는 거짓말 사이에 항상 무엇이 더 옳은 행동인지 의문에 쌓이곤 했다. 굳이 들을 필요가 없었던 말들을 들었을 땐 애써 괜찮은 척 포장해도 번뇌에 휩싸였고 선의라고 생각되는 거짓말을 알았을 땐 선의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만 남아 실망이 컸다. 결국 어느 쪽도 상대를 위한다는 가면을 썼을 뿐 자신의 마음에 면죄부를 주는 행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와서 내가 선택한 노선은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면 먼저 얘기하지 않기. 알고 싶어 묻는다면 아무리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얘기라도 선의라는 이름으로 거짓말하지 않기. 결론은 묻는 말에만 답하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 듣는 얘기는 때론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솔직함을 원할 때 하는 거짓말은 아무리 선의라는 의도로 포장해도 사실을 알았을 땐 절대로 그 의도대로 전달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매일 자잘한 거짓말들을 한다. 가끔씩 딸을 도와주러 집에 오시는 엄마에게 술 약속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외출하는 일은 다반사며, 식사는 잘 챙기는지 묻는 친구에겐 늘 잘 먹고 체중이 늘어간다 얘기하기도 하고, 밤새 혼자 자다 새벽에 아이들곁에 눕고선 밤부터 곁에서 잤다고 거짓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다시 대묻는 상대에게 끝까지 진실을 얘기하지 않거나, 내가 했던 거짓말이 걸렸을 때 선의라는 의도로 스스로에게 강력한 최면을 걸어 실망하고 속상해하는 상대에게 내 의도를 강요하거나 스스로 떳떳해하는 오만은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거짓말하기 애매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선의이든, 아니든 모든 거짓말은 결국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위한 것이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또는 작은 일로 큰 오해를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그 목적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다 자신을 위한 거짓말인 것이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았을 때 상대가 가질 수 있는 오해와 지레짐작 등의 부정적인 모든 감정도 책임질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세상에 너를 위한 거짓말은 없다.
모두 나를 위한 거짓말이다.
그 크기와 목적만 다를 뿐.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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