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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Jun 14. 2021

전우를 위하여

혼자 공부하는 공시생들에게 보내는 전상서

<전우를 위하여>



전쟁영화를 보았다.


딱히 그런 류의 영화를 즐겨보진 않았으나, 그래, 다니엘 헤니 이후로 오랜만에 열광하는 토르가 나와준다 하니 봐주는 것이 예의지.

여지없이 비현실적인 근육과 나지막한 저음으로 그는 전장에서 솔저가 아니라 워리어(잘생김이 묻어나는)였다.

전장에서 피어나는 전우애는 피가 튀고 다리가 잘려도 절대 버릴 수 없는 전장의 꽃인지라,

눈물겹고 가슴 뭉클한 일체감을 자아내는 건 전쟁영화의 숙명처럼 역시나 한치의 벗어남이 없이 감수성 바닥의 내 가슴에도 (토르를 향한 애정이) 뭉글뭉글 피어나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그대는 토르일때가 더 멋있는것 같아



삶은 자신의 선택이던 정해진 길이던 늘 다른 종류의 전쟁터의 연속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맞은 가족이라는 전쟁터에선 형제보다 더 사랑받기 위해, 단순하게는 계란말이 한쪽이라도 더 먹기 위한 아우성 아닌가.


학교라는 전장에선 교우보다 더 튀거나 혹은 튀지 않게 노선을 정하는 과정 속에 교우를 전우 또는 적으로 규정짓는 취사선택 기술을 습득하고, 수험이라는 전장에선 적이며 동시에 전우인 이중적인 관계를 통해 진취적인 또는 적대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도 하고, 사회에선 상명하복의 관계 속에 전우와 꽃피는 뒷담화의 동지애를 경험하기도 할 것이며, 심지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도 자녀의 무궁한 발전과 부의 축적이라는 공동의 지향점을 향한 남녀의 동맹을 경험하게 된다.



다행스러웠던 건, 일련의 전장의 경험 속에 내 기억은 공동의 적보다는 전우에 대한 결속의 기억이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형제라는 전우는 뒤처리가 어수선한 신병을 완벽하게 엄호해주는 파트너이고, 상사는 선봉에서 12:1로 맞짱 뜨는 방패 없이 카리스마로도 든든한 캡틴이며, 단짝은 손짓도 아닌 눈빛으로도 내가 적에게 포심 패스트볼 일지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지를 알아차릴 정도의 케미니, 전우가 주는 안정감은 목표를 향해 전진해 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철저히 혼자 하는 각개전투의 현장에 서서, 오늘도 그 시절 전우들에게 전한다.



전우가 있어 혼자 싸워볼 용기를 내었네.

전우를 기억하며 오늘도 홀로 전장에 섰네.

전우여, 오늘도 수고 많았네.

보고 싶어, 사랑하는 너희들.



덧. 오늘도 이 밤 어느 하늘아래서, 학교, 학원, 회사, 가정이라는 어느 공동체의 소속감이 없이,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군가 함께가 아닌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내일도 힘냅시다 라는 말보다 늦은 밤 풀이 죽은 어깨 한번 다독이며, 오늘도 고생했어요. 이 한마디를 전합니다.


오늘도 혼자 공부하느라 정말 수고했어요.


그들은 함께여서 강했다. 혼자 공부하는거 조오오오온나 힘들다. 하지만 비록 혼자라도 누군가 함께한다고 믿으면 쓸쓸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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