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vin Aug 05. 2016

She

[Chapter II]#5 My fairy

"아~ 이 노래 너무 좋다."

Toku의 'She'도입부의 잔잔한 기타 선율에 이어 맑은 피아노 소리와 함께 보컬의 익숙한 가사가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자 영선이 말했다.


우리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벌써 2시간이 넘도록 인왕산 밑자락 공영주차장 좁은 차안에서 긴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비가 내려 물에 젖은 앞유리창으로 멀리서 빛나는 도심의 불빛, 자동차 유리를 톡톡 두드리는 빗방울과 음악소리는  우리 두 사람을 현실에서 꽤 멀리 떠나보내 주었다. 나는 아직 차가운 캔커피를 만지작 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려 뒤로 넘기고, 정면을 향해 있던 그녀의 시선이 이따금 나를 향하면, 바로 옆자리이지만 닿을 것 같지 않는 별을 보는 듯이 아득하다.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을 잡고 있지만, 더 깊게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내가 품고 있는 세계에 초대하고픈 마음에 조바심만 부풀어 오른다.

 내가 지금 연애라는 것을 하고 있음이 실감을 하지만 살갗에 닿는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운전석 쪽 버튼을 눌러 창문을 손가락 두어 개 들어갈 정도로 열자 빗소리의 볼륨이 더 키워지고, 물기를 머금은 주차장 뒤 풀숲의 향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카오디오에 연결된 아이팟 음악이 다음 곡으로 바뀌었다.

 오스카 피터슨의 'You Look Good to Me'...

  무인도에 갈 때 3장의 음반만 가져가야 한다면(그럴 일이 있을 리가 없겠지만) 반드시 가방에 챙길 오스카 피터슨의 'We Get Request'앨범의 수록 곡 중 하나이다.

 건반 위를 빛으로 쌓인 손가락들이 흘러내리는 듯한 피아노 연주 속 브러시의 편안한 템포에 지금의 마음을 충분히 만끽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녀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몇 번 확인해 보았지만 나처럼 편집증적으로 파고드는 타입은 아니었고, 좋은 장소와 시간과 함께 기억하는 몇몇의 곡이 있을 뿐이었다. 싫어하는 음악의 장르는 꽤 명확하다.

Rock, Metal 그리고 Country뮤직 같은 종류가 그랬다. 의외였던 것이 힙합을 꽤 좋아한다. 비트가 빠르고 흥겨운 곡을 좋아하는데 시끄러운 건 싫다고 한다(역시 여자는 이래서 참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보통의 사람보다는 음악과 아주 가깝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얇운 음악지식 수준임에도 자주 음악을 전파(?),선물(?)하였다.

  (나는 작곡가나 가수도 아닌데... 본인이 주로 듣는 재즈 뮤지션들의 대중적인 곡과 연주곡들, 대중가요를 적절하게 그리고 꽤 신중하게 선곡한 mp3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었음)

 하지만, 영선이는 보내주는 음원파일도  챙겨 듣지 않았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나 바쁜 그녀는 음원을 다운로드하고 PC나 Lap top에 연결하고 전송할 여유가 없다는 푸념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폰 3gs의 아이팟을 사용한 이후로 서랍 구석 신세가 된 아이리버 MP3를 꺼내서 폴더별로 음악을 정리하여 그럴듯한 가죽케이스에 넣어서 전해주었다. 나 역시 언제나 여유가 있고,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전해 주고 싶었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래도 내쪽이 더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러자 내가 넣어준 음악을 그녀도 듣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 ' 노르웨이의 숲'을 사주었고, 그녀는 숫자에 약한 나를 위해 재무제표 관련 서적을 선물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같이 책을 읽고, 같은 음악을 공유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여갔다. 그러면서도 악필임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 작은 선물들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주차장에서 대화를 나누고는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집에 까지의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걸으며 몇 번이고 돌아보고 손을 흔들던 영선이의 모습이 빌라 현관 속으로 사라지자, 나는 다시 핸들을 부드럽게 돌려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와 내부순환도로에 올라갔다


 그 시간에 내부 순환도로에 올라가면 차가 많지 않아 비교적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다.(물론 무섭게 질주하는 택시나 suv를 조심해야 하긴 하다.)

속도를 줄이고, 의자를 뒤로 최대한 뉘어 몸을 기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차 공포증에 베테랑 운전실력과 거리가 있지만 신호도 없고, 한산한 내부순환도로에서는 운전으로 쏟는 신경과 사색의 분산 집중이 가능하다.

 어느덧 감정적으로는 나는 꽤 깊숙이 그녀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별 이 있었고, 나는 손을 뻗었으며, 지금은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이제 다음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것을 결혼일 것이다. 물론 모아놓은 돈도, 전세집을 얻거나 결혼식에 필요한 여러 비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 할 자격이 있을리가 없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신부가 되기 위한 예비 신학교를 다니다가 뛰쳐나오게 된 동기는 우습지만 '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싶다.'라는 강렬한 생각이었다. 이성친구도 없었거니와 철없고 무지했지만 난 꽤나 확고했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 이후로 그럴듯한 이성교제는 물론,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해볼만 한 사건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

 그러니까 10대 이후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게 또 막막하고, 답답하고, 고민스러워야 하는데 이상한 것은 또 그렇지는 않다.  돈도, 집도, 이렇다 할 능력도 없지만, 마음은 준비되어 있다. 영선이에 대한 내 감정에 집중하면 먼지만큼의 불안함이 없었다. 그녀가 나와 똑같은 양의 감정이 채워져 있는가에 대한 걱정 또한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측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쌍방이 절대 같은 부피나 질량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크고 무거울 것이다. 정확하게 차량으로 1시간이 걸리는 그녀와 우리집 사이의 거리는 그러한 생각들로 채워나가졌다.


어느 날, 친구 개미(계민석을 난 늘 이렇게 부른다)가 귀농하신 부모님 댁에 같이 가자고 한다. 개미 아버님을 뵌 지 너무 오래됐기도 했고, 살면서 녀석이 나에게 부탁이나 제안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나는 흔쾌히 함께 전라도 부안으로 내려갔다. 꽤나 먼길이지만 편한 친구와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새로 지은 집과 논밭을 구경하고, 부모님이 차려주신 푸짐한 식사도 하고, 짧은 일정으로 개미의 논현동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때 영선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야? 개미 오빠 사무실에 왔어요?"

밝은 목소리 속에 짓궂음이 숨어 있다. (무슨 꿍꿍이지? 또 쇼핑이라도 한 건가?)

"응 좀 전에 도착했어요. 어디예요?"

"오케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거기로 도착해. 지금 혜령이랑 있어."

"....? 어 그래 알았어요."


 잠시 후 영선이의 가장 친한 친구 혜령이의 차가 사무실 앞에 멈춰 서더니 두 아가씨가 폴짝 뛰어내리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내 옆에 있던 개미도 밝게 웃는다.


"오빠! 우리 어디 갔다 왔게?"

"둘이 어디 백화점이라도 다녀온 거야? 강남엔 무슨 일이지?"


혜령이가 중간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ㅎㅎㅎ 오빠 영선이랑 나랑 오늘 사고 쳤어 ㅋㅋㅋㅋㅋ"

"응 무슨 말이야? 뭐 샀어?"


영선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은 귀밑에 걸어 놓은 상태에서

나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 스드메 계약하고 왔지~~~ㅋㅋ"

"대박, 영선이랑 나랑 오늘 진짜 싸게 계약하고 왔어, 하하하!"


나는 잠깐 어리둥절하고, 옆에 개미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응?... 스.. 드.. 메? 그게 뭐지?"

내가 묻자 혜령이가 설명했다.

"ㅋㅋ오빠 진짜 몰라? 이거 큰일이네 결혼할 사람이 스드메도 몰라서 원~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나는 더욱 깊숙하게 당황했다. '이게 뭐지? 스튜디오? 드레스? 이거 결혼 준비 아니야? 난 아직 프로포즈도 못했는데?..' 머릿속이 엉키기 시작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물어본다는 말이

"그게 가격이 얼마나 하는데?"였다.

"응, 원래 엄청 비싼데, 웨딩박람회 업체 특가로 200만 원도 안 들었어. 잘했지요?"

"어... 싸게 했다니까 뭐 잘했네... 아..."


혜령이가 옆에서 뜨뜨 미지근한 내 반응을 보더니

"오빠, 설마 아직 프로포즈도 안 한 거야?"


당황한 나는 딱딱하게 굳어져 바닥을 뚫고 무릎까지 땅에 잠긴다.

"어.. 어~ 아직 뭐 프로포즈라고 할만한 건 안 했지~"


"아니야 그래도 오빠는 이벤트 진짜 많이 하잖아, 프로포즈를 얼마나 뻑적지근하게 하시려고 그러실까?~~ㅋ"

혜령이랑 이렇게 웃으면서 넘어가고 있는데,


"아! 맞다! 오빠 그러고 보니 나한테 프로포즈를 아직 안 했네!!?? 안 되겠다. 혜령아 가서 취소하고 오자! 이거 순서가 이건 아닌 거 같아!"

영선이가 장난처럼 말하고는 있는데 얼굴 안쪽에 게슴츠레하게 숨어있는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하하 너희들 나 모르나? 깜짝 놀랄만한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있어 이미!"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 때까지 이렇다할 계획은 없었지만......(물론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우선 개미와 헤어지고 혜령이의 자동차 검은색 로체로 우리는 누상동으로 이동했다.

'나한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영선이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가슴이 뜨거워지고, 엉덩이에 땀이 난다. 지난 시간을 잠깐 돌아보았다. 까만 가죽시트의 차 뒷좌석에 몸을 기대어 창문으로 눈을 돌렸는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겨울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트리와 빔프로젝트, 와인과 랜턴 등으로 준비한 호텔방을 보여주었을 때, 절대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글귀를 적은 은팔찌를 선물했을 때, 날 바라보았던 영선이의 눈빛은 아름답게 빛을 발했었다. 그런데 지금 혜령이가 운전하는 차 운전석 뒤에 앉은 내가 조수석에 앉은 그녀의  옆얼굴가에 비추이는 눈은 조금 먼 곳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늘 그녀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했고, 잘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의 나였는데, 영선이는 벌써 저 앞에서

내가 발을 맞춰주기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지방에서 금방 올라온 상태고, 두 아가씨도 웨딩박람회장을 돌아다녀 피곤했기에 우리 셋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영선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준 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경복궁역까지 천천히 걸어내려 왔다. 사실 지금의 나는 지금 직업이 없다. 네이버 카페 운영 활동도 하고 있고, 구직활동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백수다. 몇 달간 수입이 없이 놀다 보니, 카드값이 연체되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돈을 빌려준 것도 친구 개미와 태훈이 그리고, 영선이었다. 백수에 빚까지 지기 시작하는 나를, 프로포즈도 못하고 있는 바보 같은 나란 놈과 결혼을 생각하고 미래를 그려보곤 했을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미안했다.



몇 년간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여름 내내 반바지에 밀짚모자 눌러쓰고 낮엔 학원을 다니고, 밤에는 마케팅 카페 운영진 회의를 하는 그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져 구직활동에 조금 소홀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학원에서 영어에 목말랐던 갈증을 원 없이 해소했고, 마케팅 현업들과의 카페 운영은 현장감각, 최신 트렌드에 대한 직간접 경험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존 직장에서 만들 수 없는 인맥들을 쌓아가는 일들로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래도 시급한 것은 구직이었고, 가족과 내가 만나는 여자를 안심시키는 일었는데 말이다.


통인시장 옆 길로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들어서 서울시내를 걷다 보니 이미 밤기온은 꽤 서늘해져 있다. 겨울이 멀지 않음을 느낀다.

  그날부터 하루에 조금씩 더 시간을 투자해서 지원할 만한 회사를 서치 하고, 이력서를 가다듬어 적합한 곳에 지원하였다. 얼마 후,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회사의 위치는 구로구 구로동.

 거의 발길을 하지 않는 낯선 곳이기도 하고, 중국인들이 많아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2시 면접을 보기 위해 대림역에 내렸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영선이다.


"오빠~~ 도착했어요?" 언제나 사이다같이 상큼한 목소리.

"응 지금 역인데 조금 일찍 도착하려고 택시 잡고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응 그럴 때 타라고 있는 게 택시예요. 오늘 면접 편하게 하던 데로 잘 보고 이따 봐요~~"

"오케이"


 며칠 뒤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인사팀을 통해서 전해 듣고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샤넬백을 보았을 때보다 100배는 기뻐했다. 나는 전화기에 저장된 그녀 이름을 'Fairy'로 바꾸었다.

가라앉아 있는 나를 끌어올리고, 정체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녀, 딱딱하게 굳은 나무인형 피노키오에 숨을 불어넣은 그런 요정 같은 사람과 나는 그때부터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꿈을 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