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vin Feb 01. 2016

별을 만나다 #2

[Chapter II]#2. 아찔한 에스코오트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얼마나 마셨는지도 알 수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윤대리와 시내 한복판에 택시에서 내리고 있었다. 우리 영업팀과 S사 담당자들 간의 회식이 있던 그 날이었다.

 밤은 어두웠고 시간은 12시가 넘었다. 나는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인천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도 술 취한 업체 담당자와 낯선 동네에 떨어져 있다.

 업체 담당자 윤대리, 어찌 되었건 고객사의 담당자를 어떻게든 집까지 귀가시켜야 하는데, 머릿속은 하얗고, 기분은 들떠 있다.


"저, 윤대리님 집이 경복궁역 어디세요?"

"#$^$%^#$%&#...#$ㄸㅎ$..."


'아... 큰일이군'

저 앞에 경찰이 보여서 길을 물었다.


"저 경찰관 아저씨(나보다 어렸겠지만), 여기 경복궁역이 어딘가요"

"여기가 경복궁역입니다..."

둘러보니 고궁 담벼락 같은 게 보이긴 했다.

그리고 이 경찰관, 부러운 눈빛으로 웃으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난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런 웃을 상황이 아니란다...'



강남역 (Sigma Dp1x)

비틀거리는 내가 더 비틀거리는 윤대리를 붙잡고, 일단 좀 걸었다. 좀 걷는다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다시 택시에 탔다. 택시 기사님이 말했다.

"어디로 갈까요~~~?"

"Ajussi~~Jueek Jick Jin이요." 윤대리가 깨어났다. 놀라웠다.

"Ajussi~우회져니요~, Ajussi~ 줘어기서 또 좌외져니요~" . 8할은 의식을 잃은 그녀는 얼마 전 BBC 다큐에서 본 남아프리카 연어처럼 귀소 본능으로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역시 놀라웠다.

복잡한 골목골목을 지나나 싶더니 택시가 산을 타기 시작한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산속 동네가 있다니...'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윤대리는 택시를 세우더니 먼저 내렸다. 서둘러 택시비를 내고 뒤따라 내렸다. 저 앞에서 이미 윤대리는 나를 보더니 의아한 눈치다.  몇 초간 잠시 나를 못 알아보는 듯한 동공의 움직임. 누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한 대 맞은 듯 파르르 몸을 떨고 나서 당황하는 표정을 만들어 보이는 것을 보니 상황을 조금 인지한 듯하다.


"... 어?... 대리님이 저 데려다 주신 거예요?" 아니요. 당신이 직접 설명하고 잘 찾아온 겁니다.

"네.. 네 여기 사시는 거 맞아요?"내가 물었다.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윤대리는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네... 맞는 것 같아요~~"

"아, 다행이네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윤대리는 이미 집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인지 그 모습이 아주아주 느린 슬로우 모션처럼 보인다.

후~그제야 안심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가 내렸다가 그쳤는지 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하긴 한데,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윤대리 집으로 보이는 빌라 뒤에는 큰 산이 있고, 도심가의 불빛은 저 멀리 아득한 곳에 보였다. 꽤나 지대가 높음을 알 수 있었고, 공기도 서울  한복판보다 차가웠다. 아무리 봐도 택시가 다닐 것 같지 않은 외진 골목길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우... 우선 인적이 있는  곳으로.'라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내리막길로 한 없이 내려갔다. 골목을 지나면 계단이 나왔고, 또 그 계단을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왔다. 아까 마신 술이 역류하는 것 같다.

 방금 같이 택시를 탄 여자가 윤대리가 아니고 서울에 사는 마녀였고, 그 마녀는 나를 곤경에 빠트릴 목적으로 결계를 친 마법진으로 날 인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참을 더 내려오자 반가운 택시가 보였다. 그렇게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 잠시나마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중국 동관시에 떨어졌다.


당시 동관에 머무른 아파트,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다.               (Sigma Dp1x)

  중국 광동성 동관시, 2006년 9월부터 2년간 그곳에서 근무했었다. 인사말 '你好니하오'도 모르는 채 떠났던 중국 생활은 조선족의 텃새와 타지 생활의 불편함, 빛 하나 없는 아득한 심해에 갇혀 사는 듯한 깊은 외로움에 허덕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막판에 생명의 위협도 느꼈었고, 사고도 있었고, 마찰도 있었다. 도망치듯 한국에 들어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한 번은 다시 밟고 싶었던 도시가 동관이었고, 2일 정도 휴가를 내어 그 당시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을 찾아뵈러 갔었던 개인적인 여정이었다. 원래 계획은 살면서도 자주 가지 못했던 관광을 좀 하려고 했었는데, 아는 분이 마련해준 숙소 근처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동관시 용화팅 스타벅스 2층 (아이폰 4s)

 머릿속에서 윤대리의 이름, 윤. 영. 선. 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서울에서 이 곳 동관 까지는 2,000km인데 무언가 강력한 자성이 통증이 울릴 정도로 온몸을 무언가 쥐어짜 내어 끌어당기는 기분이 든다. 확실히 병이다.

여정 내내 자주 가던 동관시 용화팅의 스타벅스 2층에 앉아서 반나절 이상 책을 읽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생각이 서울로 향한다. 무언가 윤대리와 어색한 상황만 연출해 놓고 잠깐 빠져나온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기분에 힘이 들었다.  

 다시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다음 날,  나는 바로 윤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To be continued...






 중국 동관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사진, 귀국이 이렇게 설레였던 적이 없다.(Sigma Dp1x)







매거진의 이전글 별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